[전문가 기고]통일 준비에서 도외시되는 과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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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지난 15일 박근혜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고, 정식 위원만 50명, 전문위원과 자문단 등을 포함하면 총 149명에 이르는 대규모 ‘통일준비위원회(이하 통준위)’를 발족했다. 외교안보, 경제, 사회문화, 정치·법제도 4개 분과위로 구성됐고, 이외에도 3개 자문단(시민, 통일교육, 언론)과 국회협의체가 설치돼 있다. 통준위는 앞으로 박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고, ‘통일 한국의 청사진’을 만드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과학기술인의 한 사람으로 통준위에 과학기술 분과도 없고, 과학기술 자문단도 없는 것을 매우 의아스럽게 생각한다. 통준위가 아무리 좋은 통일 청사진을 내놓는다고 해도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경색된 남북관계는 정치색이 적은 과학기술 분야 협력관계로부터 물꼬를 터 주어야 한다. 남북 모두 나라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13일에 과학자·기술자대회를 열고 경제발전을 목표로 “과학기술에 강성국가 건설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주장하면서 ‘과학기술 중시’ 노선을 천명했다. 통준위가 과학기술 분야 사업에 우선순위를 두면 북한이 응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지난 15일 통준위 출범에 맞춰 남북협력기금 30억원을 민간단체를 경유해 북한의 농업·축산·보건의료 분야 지원을 위해 쓰는 것을 허락했다. 이 같은 허락은 2010년 ‘5·24 조치’ 이후 처음이다. 이 기금을 쓰는 분야도 과학기술 분야다.

통준위도 이러한 과학기술 분야 남북협력에 대하여 논의하여야 할 것이나, 불행하게도 통준위 위원 149명 가운데 과학기술인을 찾아볼 수 없다. 통일 전후 독일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것이다. 독일은 통일 직전 1989년에 동·서독 과학정상회담을 개최해 과학기술계 통합 방안에 대하여 논의했다. 통일 즉시 동독 지역에 막스플랑크 연구소를 설립하고, 과학자 교류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연구 인력도 재배치했다. 이를 통하여 동·서독 간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그렇다면 통준위 설립과 관련해 과학기술계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통준위에 과학기술 분과를 설치하는 것이다. 어렵다면 과학기술자문단을 설치해도 좋다. 북한 주민의 생존에 필요한 농업, 임업, 의료 분야에서 식량증산, 산림녹화, 결핵퇴치 등 협력을 우선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 정치논리에 영향을 적게 받기 위해서는 정부보다는 민간 조직에서 협력을 주도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둘째,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에 남북과학기술협력센터(가칭) 설립을 구상하는 것이다. 이 센터에서 남북한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만나 필요한 연구 주제에 대하여 논의할 수 있다면 과학기술 협력이 진전될 것이다. 전쟁의 상징인 DMZ가 평화와 경제 발전을 위한 과학기술 협력의 요람이 된다면 통일에 대한 세계적 지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우리와 북한의 과학기술 현실에 대해 정확하게 비교 파악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사전 연구가 충분히 이뤄져야한다. 북한의 식량자급률은 어느 정도인지, 산림녹화가 필요한 민둥산은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등에 대해 충분한 조사가 필요하다. 북한의 국가통계 작성 기준에 대해서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는 지속적인 협력을 위한 기초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 외에도 에너지 수급 문제, 생태계 보존 문제, 과학기술 인력 양성 문제, 과학기술 용어 통일 문제 등에서 충분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과학기술 협력 모델의 제안이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IT분야의 협력 관계가 가장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한국은 하드웨어 중심의 IT강국이고, 북한은 소프트웨어 인력이 우수하다고 한다. 한국의 하드웨어 기술과 북한의 소프트웨어 인력이 만나면 세계적인 IT파워를 형성할 수 있다. IT분야의 과학기술 협력을 제안하면 북한도 응할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 분야를 도외시한 남북협력 방안 도출은 통일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고, 북한의 호응을 얻기도 어렵다. 통준위는 과학 분야 위원들을 영입하고, 과학기술 중심의 남북협력 방안을 모색해 주기 바란다.

박성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parksh@ka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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