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의 미디어 공명 읽기]<29>메신저

메신저, 전령 또는 사자. 그리스 신화에는 전령의 신 두 명이 있다. 한 명은 헤르메스(Hermes·영어로는 머큐리 Mercury)라는 남신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리스(Iris)라는 여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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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와 아이리스를 보내는 제우스(1875년 샤를 르노르망 작품)

헤르메스는 페타소스라는 날개가 달린 넓은 차양의 모자를 쓰고 날개 달린 샌달을 신으며 케리케이온이라는 전령의 지팡이를 들고 있다. 그는 빠르게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여행자와 상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런 안내자 역할에만 그치지 않고 경계를 넘나들며 거래를 성사시키는 상인 또는 거래의 신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상인을 의미하는 영어 ‘merchant’는 머큐리와 어원이 같다. 이는 양쪽 말을 전하고 이견을 조정하는 말 재주가 좋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런 능력 덕분에 아폴로의 소를 훔치고도 벌을 받지 않을 수 있었고, 여신 헤라가 여색을 탐하는 제우스를 감시하라고 보낸 눈이 백개 달린 괴물 아르구스를 이야기로 잠들게 한 후 죽여 버린다. 헤르메스는 단순한 전달자를 넘어 해석자, 통역자를 상징한다. 영어의 해석학(hermeneutics)이라는 말도 헤르메스에서 왔다.

이와 달리 아이리스는 무지개를 의인화한 여신으로 무지개처럼 거리를 초월해 모든 곳에 임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시공간적 즉각성이나 초월성을 상징한다. 헤라의 하녀인 아이리스는 헤라를 비롯한 신들의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일방향적으로 전달한다. 헤르메스처럼 중간에 개재하여 상황과 상대에 따라 메시지를 해석해 전달하는 것이나 아니라 ‘차이 없이’ 반복만을 하는 전달자다. 이런 점에서 메시지의 반복이라는 과잉은 있더라도 꼼수, 오해, 왜곡이 발생할 여지는 없다.

결국 메신저 즉 전달자는 매개·해석을 의미하는 헤르메스의 모델과 반복·투명성을 의미하는 아이리스 모델, 두 가지로 구분된다.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아이스킬러스(Aeschylus)가 쓴 오레스테스 3부작 중 하나인 ‘아가멤논’에서 트로이를 함락한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본국 아르고스에 승리의 메시지를 보내는 봉수대는 또 다른 아이리스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파이드러스는 아크로폴리스의 연설을 교외를 산책하는 스승에게 왜곡 없이 전달하기 위해 메모를 꺼내 들었다가 혼이 난다. 중세 유럽이나 동양의 상인들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얻는 소식을 전했는데 여기에는 사실(facts) 이외에 자신들의 해석도 덧붙이기도 했다. 이것이 근대 신문의 출발이다.

근대 통신 수단을 거쳐 최근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이를 매개로 한 다양한 메신저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카카오톡이나 라인과 같은 인스턴트 메신저(IM)를 떠올리지만 SMS나 메일도 넓게 생각하면 메신저다.

메신저는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왜곡 없이 전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런 메신저가 먼 거리에 있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이곳의 모습을 투명하게 전달하는 비매개성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아이리스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과정에서 왜곡, 오해,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점 또한 알고 있다.

아이리스와 헤르메스의 충돌. 우리는 아이리스를 지향하지만 결국은 헤르메스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심지어 헤르메스에 그치지 않고 소통의 단절이 나타나기도 한다. 복수의 신 퓨리에스(Furies)가 바로 그것이다. 고향에 돌아온 아가멤논은 부정한 아내 클리템네스트라의 독거리 그물망에 묶여 죽는다. 메신저를 사용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아이리스, 헤르메스, 아니면 퓨리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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