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악화·JY 경영승계 이슈 겹쳐
‘삼성그룹이 흔들린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와병이 길어지면서 삼성그룹의 시장 지배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23일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삼성은 배당금 상향 조정과 자사주 매입 등 전에 없던 주주들의 압박에 직면했다. 경영권 승계 시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피해갈 뾰족한 방법도, 상호 소유구조 변경 시 삼성가의 그룹 지배력을 유지할 묘안도 없는 상황이다.
블룸버그는 “삼성그룹의 가장 강력했던 가장(이건희 회장)이 와병 3개월차에 들어가자, 이재용(JY) 부회장을 비롯한 그의 가족은 스마트폰 사업으로 쌓아올린 재벌가의 시장 지배력이 약해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JY의 딜레마
지난 2개월여 동안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등 관련 기업은 일제히 주가가 하락하는 양상이다. 대신증권의 한 연구원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의 성장이 느려지자 주주들은 전략 변화 또는 투자를 줄일 것을 재차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압박은 이 회장이 일군 절대적인 리더십이 하루아침에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이 회장은 지난 27년간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은 이후 ‘상호소유 구조’를 발판으로 기업을 키웠다. 하지만 이는 JY의 경영권 승계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현행법에 따르면, 이 회장 사망 시 자녀들은 60억달러(약 6조1400억원)라는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근혜정부는 최근 재벌의 상호소유 구조를 통한 세금기피를 막아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를 피하기 위해 상호소유 구조에 손을 대면 삼성그룹에 대한 삼성가 구성원의 절대 지배력이 약해진다. 국민 정서를 건드릴 위험 부담도 있어 딜레마다. 현재 이건희 회장의 재산은 127억달러(약 13조원) 규모다. 이 회장 사망 전에 재산액수를 조정해 합법적인 공제를 받는 것이 통상적인 전략이다.
김흥유 경희대 경영대 교수는 “이건희 회장이 삼성을 세계 리더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상호소유 구조를 활용, 외부 압박으로부터 경영권을 지켰기 때문”이라며 “이 구조가 무너지면 삼성 그룹에 대한 삼성가의 영향력은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복잡한 지배구조 개선이 곧 ‘JY 역량 시험대’
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작업이 곧 JY의 경영 역량을 증명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김준기 연세대 로스쿨 교수는 “재벌 소유 구조의 단순화는 현 정부의 기조이자 시대적 요구로 다른 총수기업도 이를 피해갈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이 작업이 적절하게 이뤄진다면 이들 기업의 투명성도 제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문화 4.0’의 저자이기도 한 민진규씨는 “수십년간 유지돼온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이건희 회장조차 바꾸지 못한 부분으로, JY가 직면한 최대 문제”라며 “이를 JY가 해결한다면 경영 역량을 증명함과 동시에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삼성 일가는 단 1.53%의 보유 지분으로 삼성그룹 전체의 49.7%를 관리하고 있다.
◇‘문제는 삼성전자?’…인사 메스 들이댄 JY
블룸버그는 삼성전자가 인적 쇄신으로 조직에 건전한 긴장을 불어넣으려던 전략에 차질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지난 2분기 실적 악화와 JY 경영 승계 이슈가 겹치면서 조직 문화가 더욱 경직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삼성전자 임원들은 공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기보다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특히 스마트폰 사업이 부진하지만 영업, 개발, 구매 등 핵심 부서에서 전혀 나서지 않고 있다. 스마트폰 사업에서 돌파구를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위험을 최소화하고 자리를 지키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담당 전무가 수십억원 수준의 투자결정을 안 해줘 실무자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며 “삼성 기업문화와 복지부동은 어울리지 않지만, 최근 내부 분위기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특히 연배가 높은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JY가 자기 사람을 심고, 조직 내 혁신 분위기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젊은 인력을 중용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이럴 경우 연령대가 높은 임직원들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정미나기자 mina@etnews.com,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