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장학생’이라는 말이 있다. 2007년 ‘삼성 X파일’이 폭로되면서 일반화된 용어다.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찰, 정치인을 빗대 그렇게 불렀다. ‘삼성 장학생’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엘리트 사회에 드리운 삼성의 그림자가 얼마나 깊은지 단적으로 보여줬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에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한 것도 그 때쯤이다.
삼성 장학생은 요즘도 종종 빙산의 일각을 드러낸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학계, 심지어 청와대 인사까지 등장한다. 얼마 전 면책 특권 논란을 빚은 ‘청와대 비리 행정관’ 가운데 일부도 삼성으로부터 향응과 금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의 검은 돈이 권력의 핵심부인 청와대까지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이 경악했다.
최근 ‘삼성 장학생’ 논란은 언론계에서도 불거졌다.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열린 태블릿PC 신제품 발표회에 몇몇 기자만 초청하고, 또 특정 매체에만 제품 리뷰 기회를 제공한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의혹을 즉각 부인했지만, 몇몇 미디어에서만 관련 기사가 게재되자 초대받지 못한 기자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삼성전자가 친(親)삼성 매체를 지원한다는 공공연한 비밀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박근혜 정부가 최근 단행한 개각에서도 찜찜한 대목이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에 최양희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을 발탁한 것이다.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을 민간차원에서 지원하기 위해 삼성이 출연한 재단이다. 비즈니스보다 공익적인 목적이 강하지만, 사실상 삼성이 운영하는 조직이다. 성공 DNA를 가진 삼성 출신이 공직에 진출한 사례가 몇 번 있지만, 현직 인사가 전격 발탁된 것은 이례적이다.
우려스러운 점은 미래부와 삼성전자의 관계다.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을 총괄하는 미래부는 그동안 삼성전자와 긴장 관계에 있었던 게 사실이다. 미래부가 주도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에 삼성전자는 공개적으로 이견을 내놓았다.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설립 당시에도 재단의 지적재산권을 삼성이 무료로 이용하거나 우선 구매할 수 있는 문제를 놓고 양측이 대립했다.
미래부는 휴대폰 보조금, 망중립성 가이드라인 등 통신사와 삼성전자가 대립하는 문제를 조정하는 주무부처다. 단통법 제정으로 삼성전자와 같은 휴대폰 제조사를 감독하는 한편 삼성전자에 특혜가 될 수 있는 통신망 투자 정책도 수립한다. 사사건건 삼성전자와 충돌하거나 밀착할 여지가 크다. 그런 부처의 수장에 삼성 출신 인사가 앉게 됐다. 아이러니다.
물론 공직자의 으뜸 덕목은 공사(公私) 구분이다. 최 후보자도 이런 세간의 우려를 알고 첫번째 덕목으로 삼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과 갈등을 피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적어도 삼성에는 최문기 현 장관보다 최 후보자에 더 많은 핫라인이 있을 것이다. 미래부 직원들이 인사권을 쥔 장관 의중을 살펴 삼성 관련 정책을 자기 검열할 우려도 없지 않다.
최 후보자 발탁 직후 삼성 홍보팀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삼성과 연관성을 부각시켜주지 말 것을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의미심장하다. 관피아, 정피아에 이어 이젠 ‘삼피아’까지 경계해야 하는 세상인가.
장지영 정보방송과학부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