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대한민국 제조업 `패배의식`을 벗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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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협력사 관계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음날 만나기로 한 약속을 미루자는 것이었다. 최근 삼성의 발주량이 크게 줄어들어 연일 비상대책회의를 하기 때문이란 게 이유다.

같은 날 방문한 또 다른 중소기업의 하소연이다. 사장과 임원 모두 연거푸 담배를 피워대며 실적 부진을 걱정했다. 당장 다음 달부터 임원 연봉을 삭감하고, 그래도 경영여건이 회복되지 않으면 직원들 구조조정도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요즘 대한민국의 중소 제조기업들은 말 그대로 비상상황이다. 삼성 한곳만 바라보며 사업을 해온 곳은 특히 심하다. 그런데도 삼성은 후계 구도에만 열중해 있고 혁신에는 둔감하다. 믿었던 고객사의 발주량이 급감하니 달리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고객 다변화를 꾀했던 곳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프리미엄 시장은 글로벌 대기업들이 버티고 있고, 중저가 시장은 중국을 당해낼 방법이 없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빛을 발했던 대한민국 제조업이 이토록 취약했었나 하는 생각이 드니 허탈한 마음뿐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최근 만난 유럽 제조기업의 한 인사는 “한국은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인재들이 많은데다 인프라도 잘 갖춰졌다”며 부러워했다. 실제로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제조업이 경쟁력을 지닌 곳은 드물다.

지금은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소나기가 그치기만을 기다릴 때가 아니다. 오히려 과감한 혁신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본들 몇 년 뒤 또다시 위기에 빠질 게 뻔하다.

대기업 탓, 정부 탓 하다 보면 끝이 없다.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중소기업 스스로 체질을 바꾸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삼성전자 한곳이 아닌 시장으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정부와 대기업도 지금의 위기를 취약한 제조업 생태계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 제조업의 역량을 발휘할 때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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