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국내 자원 이용해도 신고해야…나고야의정서 대응법 놓고 갈등

생물유전자원 접근 시 정부 신고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나고야의정서 대응 법규 제정을 놓고 정부부처 간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특히 내국인이 국내 유전자원에 접근할 때도 의무적으로 사전 신고해야 한다는 조항을 두고 과학계와 미래창조과학부 반발이 거세다.

25일 미래부와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12월 입법예고된 ‘유전자원 접근 및 이익 공유에 관한 법률 제정안’의 국회 제출이 부처 간 이견으로 미뤄지고 있다. 두 부처는 큰 틀에서 법규 정비가 필요하다는 데 합의를 봤지만 내국인 규제와 국가책임기관 지정 문제에서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1월 28일 입법예고 기간이 끝났지만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지 못했다.

우선 가장 큰 쟁점인 내국인 규제 조항을 둘러싼 과학계 반발이 거세다. 법안 8조에 따르면 내·외국인 관계 없이 국내 유전자원에 접근하려면 정부에 사전 신고를 해야 한다. 위반 시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우리나라 과학자가 국내 자원을 이용해 국내에서 연구를 진행할 때도 정부 규제를 받아야 한다. 유전자원에는 유전의 기능적 단위를 포함하는 식물, 동물, 미생물, 유전 물질 등이 모두 포함된다.

2010년 생물다양성협약(CBD) 제10차 총회에서 체결된 나고야의정서는 ‘유전자원에 대한 접근 및 이익 공유(ABS)’가 골자다. 생물유전자원을 이용할 때 관할국에 사전 허가를 받고, 발생한 이익을 공유하도록 규정했다. 우리나라는 환경부 장관이 2011년 서명해 지난해 이 같은 내용의 관련 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를 두고 과학계에서는 연구자들의 불편을 가중시킨다며 반발했다. 세계적 경쟁 상황에서 자원 취득 기간과 비용이 증가해 연구가 지연되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장영효 생명공학연구원 ABS연구실장은 “외국 자원을 들여올 때 외국 정부가 규제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우리 정부가 우리 연구를 지연시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연구가 늦어지면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연구에 한해서는 자유로운 자원 이용을 보장하자는 주장이다.

환경부는 이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의 내외국인 차별금지 조항 위반 소지가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미래부와 계속 조율하고 있고 전문가 의견도 듣고 있다”며 “차별금지 조항 문제가 해결되야 논의가 진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또 순수 연구에 대해서는 예외 조항을 둘 수 있다고 밝혔지만 과학계 우려는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장 실장은 “순수 연구의 정의는 특정 식물이 어떤 종이라는 식의 분류학”이라며 “실용화할 수 없는 연구가 대부분이라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미래부 역시 과학계와 비슷한 입장이다. 미래부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자원을 외국으로 내보내는 경우보다 들여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며 “외국 자원 이용을 줄이고 국내 자원을 이용하게 하려면 법안 마련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전자원을 관리하는 국내 전담 기관 역할을 어느 부처가 맡을지도 쟁점이다. 환경부는 농업 분야와 해양·수산 분야를 제외환 유전자원 관리를 환경부로 일원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미래부는 생명연구자원법 상 가장 많은 자원을 미래부가 관리해왔고, 연구개발(R&D) 주무 부처로서 미래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응 방식에서도 별도법을 제정하자는 환경부와 기존 생명연구자원법을 개정하자는 미래부 입장이 부딪힌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전에 비해 의견 차가 많이 줄었다”며 “부처 간 이견 조율과 입법을 계속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환경부는 지난해 법안 마련 당시 “우리나라가 올해 10월 CBD 총회를 개최한다”며 “개최국으로서 조속한 법령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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