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관피아`를 위한 변명

‘관피아(관료 마피아)’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지방 선거가 끝나면서 더욱 고삐를 죄는 모양새다. 검찰이 선거로 잠시 느슨해졌던 관피아 수사에 재착수했다는 소식이다. 이미 검찰은 지난달 말부터 18개 일선 검찰청에 특별수사본부를 꾸리고 대대적인 기획수사를 시작한 상태였다. 감사원 등 사정기관에 이어 검찰 등 사법기관까지 나서면서 관피아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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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피아, 결론부터 얘기하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폐해도 분명하다. 산하기관과 협회·단체의 주요 보직을 관료 출신이 독차지하는 이른바 ‘셀프 재취업’은 위화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인물도, 능력도 검증이 안 됐는데 단순히 관료라는 이유로 자리를 독식한다면 신뢰가 생겨날 리 만무하다.

거기에 전문성을 요구하는 곳까지 꿰차고 있다면 백 번 양보해도 할 말이 없다. 무엇보다 인맥으로 엮어진 패거리 문화는 행정의 비효율성을 자초할 소지가 크다. 이는 곧바로 ‘끼리끼리’ 유착 비리로 이어지거나 비리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려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관료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마녀사냥 식으로 몰아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무조건 관료 출신은 안 된다는 주장은 흑백 논리만큼 위험하다. 어디 ‘관피아’뿐인가. ‘여(여당)피아’와 ‘청(청와대)피아’ 등 아직도 사회 곳곳에는 낙하산 인사가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사회 전반의 잘못된 관행이나 문화를 바꾸지 않고 관료 출신만 틀어막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벌써부터 ‘관피아’가 가던 자리를 ‘여피아’ ‘청피아’가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학교보다는 정치에 관심이 높은 폴리페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민간과 유착 관계는 없다 치더라도 업무 이해도가 떨어지고 현장과 조직을 모를 가능성이 크다. 겉모양만 바뀌었지 능력보다 권력과 인맥이 앞선다는 사안의 본질은 여전히 똑같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그나마 고위 관료는 최소한 업무와 열정에서는 검증된 인물이다. 개인 경험에 비춰볼 때 대부분의 고시 출신 관료는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사명감이 있고 지독한 일벌레다. 관료 역할이 이전에 비해 크게 축소됐지만 우리 경제가 압축 성장할 수 있는 요인 중의 하나는 사명감과 물불 안가리는 일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실제로 낙하산이라고 비난하지만 산하기관이나 공기업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는 관료도 적지 않다. 여기에 본인의지와 관계없이 공직생활 내내 숱한 감사를 받았기에 누구보다도 행동거지가 조심스럽다. 비교적 사리사욕과 같은 유혹에서 자유롭고 주변도 깨끗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일부 미꾸라지 같은 관료는 제외다.

세월호로 촉발됐지만 관료 개혁은 시대적 과제다. 언젠가는 짚어 넘어가야 할 현안이다. 그렇다고 관료가 가진 전문지식과 경험을 깡그리 무시한다면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아픈 곳을 임시방편으로 땜질하거나 무조건 도려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풍부한 관료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최선이 아니더라도 차선은 될 수 있다. 최선은 물론 법적·제도적 장치를 강화하고 이를 뒷받침할 의식과 문화, 사회 시스템을 제대로 조성하는 일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