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경]조직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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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시효는 범죄 발생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형벌권을 소멸시키는 제도다. 종종 영화나 드라마 소재로 사용되는데, 이는 제도 유지 여부를 두고 찬반논쟁이 여전히 뜨겁기 때문이다.

정의 구현과 어긋나 보이는 공소시효가 여전히 유지되는 이유는 법적 안정성 때문이다. 법적 안정성은 정의, 합목적성 등과 함께 대표적인 법의 이념(목적) 중 하나로, 말 그대로 사회적 안정을 위해 존재한다. “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의 판단에서 법적 안정성의 가치를 알 수 있다.

법적 안정성 만큼이나 정책적 안정성도 중요하다. 일관된 원칙 없이 정책이 수시로 변하는 나라는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옳지 않은 정책이라면 과감하게 바꿔야 하지만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라면 안정성을 고려해 재고, 삼고해 선택하는 게 맞다.

최근 관피아 척결에 나선 정부가 미덥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주 “5급 공채와 민간경력자 채용을 5대 5 수준으로 맞추겠다”며 “고시와 같이 한꺼번에 획일적으로 선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무능력과 전문성에 따라 필요한 직무별로 필요한 시기에 전문가를 뽑는 체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당장 내년부터 행정고시 선발 인원을 줄일 방침이다.

해양경찰 폐지 결정으로 수험생을 당황하게 했던 정부는 행정고시 고시생까지 ‘멘붕’에 빠뜨렸다. 관피아 척결을 위한 나름의 특단의 조치라지만 누군가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을 뿐이다. 이런 식이라면 큼직한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예상치 않게 피해를 입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앞으로다. 적지 않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혁신을 감행한 만큼 이제부터라도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모습이 뒷받침 돼야 한다. 정책적 안정성이 유지되지 않는 사회는 무질서해지고 편법이 난무하게 된다. 큰 틀의 정책 변화가 필요할 때에는 과감하게 혁신을 추구하되, 심사숙고해 안정성을 최대한 저해하지 않는 선의 예측 가능성을 고려해 달라는 얘기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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