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의 미디어 공명 읽기]<20>텍스트 캡처

디지털 카메라의 용도가 바뀌고 있다. 과거에 카메라를 가지고 인물이나 풍경을 주로 찍었다면 이제 텍스트를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사용한다. 지나가다 눈에 띄는 포스터나 게시판, 시간표는 물론이고 명함, 책이나 논문의 도표를 카메라로 찍어 저장한다. 이런 행위를 우리는 이미지 캡처와 구분해 텍스트 캡처라 부를 수 있다. 디지털 전용 카메라도 그렇지만 휴대전화에 들어있는 카메라, 즉 폰카가 일상화되면서 텍스트 캡처 행위 또한 보편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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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카메라를 이용한 텍스트 캡처 장면

젊은 사람들, 특히 전문직 종사자의 휴대전화를 열어 보면 인물이나 풍경 못지않게 텍스트를 찍은 사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스로도 이렇게 많은 텍스트를 카메라로 기록해 놓고 있다는 것에 놀랄 정도다.

이런 용도 변화는 19세기 초반 니엡스와 탈보트에 의해 사진기가 발명된 이후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초창기 사진은 화가들이 그리던 초상화를 대신하는 인물 사진이 주였고 이런 전통은 다른 대상으로 확대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돼 왔다. 미디어 역사를 보면, 시각적 이미지를 다루는 미디어는 회화, 사진, 영화 등으로, 그리고 텍스트 정보를 다루는 미디어는 육필, 책, 타자기, 초창기 컴퓨터 등으로 이어졌다. 이제 디지털 융합 시대를 맞아 이런 두 전통이 통합되기에 이르러, 시각적 미디어를 기록하는 카메라라는 미디어가 텍스트 정보도 기록하게 된 것이다.

텍스트 캡처를 통해 카메라에 저장된 사진은 과거 사진과 기술적 형식은 같지만 그 대상이 다르다는 점에서 텍스트 이미지라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게 된다. 카메라나 휴대전화에 저장된 텍스트 이미지는 그 자체로 아카이빙의 대상이 되고 인터넷과 같은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된다. 이런 점에서 텍스트 이미지는 음악이나 문서를 담은 다른 파일과 같다.

현재 기술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간다. 텍스트 이미지가 광학문자인식(OCR) 기술을 통해 텍스트로 다시 전환된다. 어렵게 표현하면 이미지라는 정보의 존재론적 위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하나의 사례를 들면, 안드로이드용 구글 닥스 앱은 문서를 카메라로 찍은 후 이를 텍스트로 전환시켜준다. 책이나 인쇄체로 된 문서는 물론이고 필기체까지 텍스트로 바꿀 수 있다. 이제 이 텍스트는 편집 등의 과정을 통해 일반 문서처럼 변경할 수 있다.

이렇듯 포스터나 책이 실린 텍스트가 텍스트 이미지로, 다시 텍스트로 전환되는 유연한 과정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과거에 포스터나 책의 내용을 나중에 보기 위해 저장하려면, 수첩이나 공책에 메모를 하거나 복사기를 이용해 복제를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해당 부분을 칼로 오려 수첩이나 공책에 풀로 붙여두어야 했다. 컴퓨터 시대 ‘복사하기와 붙이기’라는 보편화된 문서 편집 방식 방식은 과거 이런 종이 매체의 관습을 모방한 것이다. 복사하기와 붙이기는 텍스트 문서 편집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듯 이미지도 복사해 붙인다. 이렇듯 이미지와 문서 사이의 경계는 약화되어 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미디어 융합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측면이다.

미디어는 관념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미래를 바라보며 무엇을 기록하고 저장한다. 휴대전화의 카메라, 그리고 텍스트 캡처는 바로 정보를 기록하고 저장하고자 하는 욕망의 구현물이다.

이런 욕망은 디지털 시대만의 고유한 것은 아니고 노트 메모에서 보듯 아날로그 시대를 포함하는 역사 시대의 모든 시간에 걸쳐 공명해 왔다. 인류는 당대의 테크놀로지를 다른 용도로 전환시키거나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개발하면서 이런 욕망을 구현해 왔던 것이다.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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