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에서 해방된 `무선철도` 시대 열린다

“급전(전력공급) 시작” “보조 인버터 기동” “역전기 전진 투입” “열차 추진”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이수길 박사의 신호에 맞춰 육중한 열차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열차는 최고 시속 430㎞를 내는 차세대 고속열차 ‘해무’다. 6량 무게 308톤에 달하는 해무는 전력선으로부터 전력을 하나도 공급받지 않은 채 ‘무선’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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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연은 지난 20일 경기도 의왕시 시험 선로에서 차세대 고속철 해무에 적용한 무선 급전 기술을 시연했다. 선로에 급전 장치를 깔고, 열차 밑에 집전판을 달아 전선 없이 대용량 전력을 공급하는 기술이다. 열차 위로 지나는 전차선과 부대시설을 완전히 없앨 수 있어 다양한 활용이 기대된다.

무선 급전 기술은 전기버스와 경전철에 시험 중이지만 용량이 낮았다. 이날 해무에는 60㎑ 고주파 전력을 자기장으로 변환해 2800볼트 1㎿ 전력을 공급했다. 기존보다 5배 이상 많은 전력량으로, ㎿급 무선 급전은 세계 최초다. 주파수를 높여 전력 장치 무게 대비 용량을 3배 이상 증가시킨 것이 주효했다.

해무를 제원대로 움직이려면 9㎿ 전력이 요구된다. 고속철 적용까지는 개량이 더 필요하다. 이날 해무는 120미터 길이 선로를 시속 5㎞로 달렸다. 선로가 길면 시속 150~170㎞까지는 속도를 낼 수 있다.

당장은 노면전차(트램) 같은 경전철에 우선 적용한다. 철도연 측은 3년 이내 실용 모델을 개발해 4~5년 정도면 상용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기환 철도연 원장은 “트램에 대한 무선 급전 시험은 지난해 5월부터 이어오고 있다”며 “내년 국가 연구개발(R&D) 과제로 선정되면 본격적인 상용화 연구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전철 적용이 완료되면 지하철 등 중전철로 확대할 방침이다. 고속철 적용은 장기 과제로 추진할 계획이다.

무선 급전 방식 운행으로 가장 기대되는 효과는 미관과 안전 확보다. 열차 위를 어지럽게 지나는 전선을 걷어내면 단선과 감전 사고를 막을 수 있다. 무선 급전 방식에서는 열차가 지나지 않는 구간에 전기를 공급하지 않는다.

전차선 설치비와 유지보수비를 아낄 수 있고, 터널을 좁게 만들어 건설비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전차선이 사라진 공간을 활용하면 ‘2층 열차’도 가능하다. 전차선이 못 들어가 디젤 열차를 운영하던 항만에서도 전기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전력 장치 경량·소형화와 경제성 제고가 과제다. 현재 3㎝인 급전 선로와 집전판 사이 간격을 8㎝까지 늘이는 것이 목표다. 열차가 달릴 때 발생하는 진동으로 인해 급전 선로와 집전판이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간격은 늘이면서 전력 효율은 높여야 한다. 현재 전차선 방식 전력 효율이 95% 내외지만 무선 급전 방식 전력 효율은 83% 정도다. 90%는 넘어야 실용화가 가능하다. ㎞당 25억원인 건설비를 가선 방식과 같은 15억원 수준으로 낮추는 것도 숙제다.

이준호 철도연 첨단추진무선급전연구단 선임연구원은 “소형화와 경량화, 비용 절감을 위한 최적 설계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라며 “전력 공급 방식 변화로 철도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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