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리더의 대명사인 아마존의 킨들은 펌웨어 2.5부터 ‘포퓰러 하이라이츠’라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이 구절에 밑줄을 친 다른 이용자가 몇 명인지를 표시해 주는 기능이다. 이를 보며 독자는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이 구절을 ‘중요하다고 또는 인상 깊었다고 느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SNS인 페이스북 이용자는 자신이 읽은 신문 기사를 친구들과 공유한다. 친구들은 이를 보고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댓글을 단다. 댓글이 여러 개 모여 해당 신문 기사를 둘러싼 글줄기가 만들어진다. 자신이 읽은 감명 깊은 책의 구절이 이런 식으로 친구들과 공유되기도 한다.
흔히 이런 읽기를 ‘소셜’ 읽기라고 한다. 여기서 소셜이라 함은 사회적이라기보다는 집합적, 친교적, 교호적이라는 의미다. 책이나 신문 기사를 읽으며 집합적인 경험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책이나 신문 기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읽는 거의 모든 텍스트가 인터넷 시대를 맞아 이렇게 다른 사람과의 관계적 맥락 속에 놓이게 된다. 유튜브를 통해 접하는 뮤직비디오와 같은 동영상도 마찬가지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동영상이나 사진과 같은 이미지도 읽는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텍스트다.
유튜브는 동영상으로 답하기라는 독특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동영상에 글로만 댓글을 다는 것이 아니라 동영상으로도 답을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글, 동영상, 이미지가 어우러지는 글줄기가 아닌 미디어줄기가 만들어진다. 인터넷을 매개로 한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이 역사상 유례가 없는 혼종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셜 읽기는 인터넷 등장 이후에 나타난 우리 시대의 독특한 읽기 관습인가? 단순하게 답하면 모든 읽기가 소셜 읽기다!
서구 중세 시대의 필경사들은 책을 베껴 적으면서 오류라고 생각되는 글자나 문구의 바로 옆 지면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놓곤 했다. 지금과 달리 띄어쓰기나 마침표가 없는 책의 경우는 어떻게 끊어 읽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이런 오류의 가능성은 더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류를 넘어 이 문장 자체가 갖는 의미에 대해, 그리고 관련하여 참조할 다른 책의 제목을 적어 놓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방주, 나아가 각주의 기원이다. 이런 점에서 이런 노트는 소셜 읽기의 기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책을 읽기 전에 그리고 책을 읽고 나서 친구나 동료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소셜한 것이다. 책을 읽고 내가 갖게 된 느낌은 절대로 개인적일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느낌이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에 머물기를 원치 않기에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궁금해 한다.
그렇다면 인터넷 이후의 소셜 읽기와 전통적인 소셜 읽기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인터넷 이후의 소셜 읽기는 페이스북의 전형적인 예에서 보듯 소셜한 계기가 기술적으로 제공된다는 것이다. 즉 SNS와 같은 기술적으로 매개되는 대인적 관계가 읽기와 결합되고 있다. 그리고 대인적 반응이 전달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특기할 만 한 점은 킨들의 포퓰러 하이라이츠의 예에서 보듯 읽기 전이나 후가 아니라 책을 읽는 바로 그 순간에 소셜한 계기가 제공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집합적인 소셜 읽기가 보편화되는 현 시점에서 명상을 전제로 한 고독한 읽기는 사라지는 것인가? 수천 년에 걸친 읽기의 역사 속을 공명하는 소셜 읽기는 인터넷 시대를 맞아 소셜의 과잉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