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 그랜드 체로키에 대한 아찔한 기억이 두 번 있다. 지난해 가을 무렵, 행사차 강원도 산길을 달리던 중이었다. 초행길인 데다 지각을 하는 바람에 몹시 서둘렀다. 아마도 탄광지대를 지나는 중이었나보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도로 위를 석회석을 싣는 기다란 트레일러가 연이어 지나갔다. 내리막길, 코너에서였다. 체로키를 추월해 막 앞서나가기 시작하던 트레일러가 시끄럽게 경적을 울려댔다. 이상했다. 코너라 앞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우리 앞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순간 하나의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아, 나에게 하는 경고로구나.’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육중한 체로키가 급하게 정지했다. 코너를 돌아 곧은 길이 나오자 2차선이 1차선으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두꺼운 콘크리트로 만든 중앙 분리대까지. 조금만 더 갔던들 콘크리트와 트레일러 사이에 끼어 무슨 일을 당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모골이 송연해졌다. 체로키의 제동 성능에 놀랐던 기억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올해 초에는 신형 그랜드 체로키를 탔다. 서울 시내의 평범한 도로였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녹색불이 켜지자 앞 차가 출발했다. 당연히 나도 출발. 그런데 갑자기 앞 차가 급정거를 했다. 앞 차와의 거리는 불과 2미터 남짓. 충돌이 불가피했다. 온 몸의 털이 쭈뼛쭈뼛 해지면서 본능적으로 오른 발을 브레이크에 갖다 대려는 찰나, 계기판에 온통 빨간 불이 들어오면서 차가 자동으로 정지했다. 말로만 듣던 전방 추돌경보장치(FCW)가 실제로 작동한 것이다. 요즘 자동차에는 첨단 주행보조시스템(ADAS)라고 해서 안전 운전을 돕는 다양한 기능이 많이 채택된다. 그러나 수많은 차를 타면서 이 기능들이 실제로 도움이 된 적은 거의 없었다. FCW가 작동하는 것을 보고서야 ADAS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랜드 체로키는 두 번이나 아찔한 기억을 남겨주었지만, 뛰어난 안전장치 덕분에 아찔한 기억은 고마운 기억으로 바뀌어 있다.
뉴 그랜드 체로키는 SUV 명가 지프의 여러 라인업 가운데서도 단연 우뚝 솟은 존재다. 3.0 디젤 모델은 4월까지 400대가 넘게 팔리며 크라이슬러 전체에서도 가장 많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작년보다 판매량이 56%나 늘 정도로 인기가 치솟고 있다. 위에 언급한 두 개의 사례에서 보듯 그랜드 체로키는 한 눈에 보기에도 안전하고 든든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근육을 보는 듯한 파워풀한 외모에서 강인함이 뿜어져 나온다. 딱 봐도 미국 차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도 3.0 V6 터보 디젤 엔진과 ZF 8단 변속기를 장착해 복합연비가 11.7㎞/ℓ나 나온다. 이정도면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랜드 체로키의 크기가 압도적이어서다. 이 차는 길이가 약 4.8m, 높이가 1.9m에 달하며 공차 무게는 2.4톤이나 된다.
잘 달린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최고출력 241마력, 최대토크 56.0㎏·m의 괴력을 발휘하는 이 차는 그야말로 ‘무자비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황소같은 질주를 보여준다. 아쉽게도 오프로드를 달려보지는 못했지만 가속 시 느껴지는 힘은 바위산이라도 오를 기세다. 4륜구동 시스템 ‘쿼드라 드라이브Ⅱ’를 느껴보지 못한 점이 후회된다. 이 시스템은 상황에 따라 전륜, 후륜은 물론이고 어느 한 바퀴에만 100% 동력을 전달할 수 있다. ‘길이어도 좋다, 아니라도 좋다’란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여기에 ‘셀렉 터레인’ 지형 설정 시스템을 이용하면 달리는 길의 종류에 따라 샌드, 머드, 오토, 스노, 락 5가지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어떤 모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파워트레인과 브레이크, 서스펜션을 최적으로 조합해주기 때문에 역동적이면서도 안전한 오프로드 주행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그랜드 체로키를 타면서 ‘안전 성능’을 많이 체험한 터라 안전 장치에 관심이 갔다. 이 차에는 60종이 넘는 안전 및 편의사양이 적용됐다. 특히 자동 브레이크 시스템이 적용된 전방 추돌경보시스템 플러스(FCW Plus)와 젖은 노면 주행 시 브레이크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해주는 빗길 브레이크 보조시스템(RBS), 가속 페달에서 급하게 발을 떼면 급제동 상황을 미리 예상해 브레이크 패드를 디스크에 접근시켜 대비하는 ‘레디 얼러트 브레이킹 시스템(RAB)’ 등이 실제 주행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된다.
이 차의 트렁크 용량은 457~1554리터다. 웬만한 가족 단위 짐을 싣는데는 무리가 없는 크기다. 여행을 다니면서 가족의 안전까지 챙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랜드 체로키는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