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좋은 게 좋은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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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에게 ‘만약 …했더라면’이라는 가정은 가슴을 찢는 말이다. ‘희망을 버리지 말고 기다리자’는 말도 이제는 입 밖으로 안 나온다. 무슨 말인들, 무슨 조치인들 그들을 위로할 수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재구성하듯, 하나하나 따져봐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하다. 제대로 된 평가와 반성을 내오지 않으면 또다시 반복돼도 개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성과 무감각만 키울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내놓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17대 과제’는 곱씹어볼 만하다. 이런저런 문제제기를 누구나 알기 쉽게 조목조목 정리해낸 것이 약자의 입장에서 많은 사건사고를 다뤄봤던 전문가답다는 생각이 든다.

근본적 원인 점검에서부터 직접적 원인 분석, 구조과정에서의 문제점, 사고 이후 정부대응과 수사과정 문제 등으로 재분류한 17가지 과제들을 되짚어보면서 놀랍게도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해양수산부가 해체되면서 선박 운항 및 안전 관리 책임이 불분명해지고 해양사고 대응체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게 됐다는 사실을 관련 공무원과 종사자들은 알고 있었다.

선박의 출항에 앞서 화물의 적정 적재량이 얼마인지, 평형수를 제대로 확보했는지, 불법 개조에 따른 사고 우려는 없는 지를 점검해야 한다는 것을 해양경찰청과 해양항만청은 알고 있었다.

사고발생 후 앞서 탈출했던 승무원들은 배에 승객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해경은 먼저 구조한 승무원들과 함께 남은 승객들에게 탈출 안내방송을 할 수 있고, 선체로 진입해 구조 활동을 펼칠 수도 있었다.

해경은 바다에서 조난된 사람이나 선박, 항공기를 수색하고 구조하는데 필요한 사항을 민간 구난업체에 긴급 요청할 수 있는 법적 권리인 ‘수난구호명령’을 발동하지 않았다.

청와대와 정부는 대책발표에 급급해 엉터리 실종자·구조자 수를 발표해 국민 신뢰를 스스로 땅에 떨어트렸고, 언론은 정보를 교차 점검하는 기본 절차도 무시하고 엉터리 발표를 그대로 옮겨 국민을 대혼란에 빠트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제들은 모두 알고 있는데 애써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 피해를 키운 것이다. 해당 업무와 관련된 직접적인 위치에 있다면, 몰랐어도 직무유기, 알고도 방치했다면 더 큰 벌을 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간접적 위치에 있다면 도의적으로 공범이 될 수 있다.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늘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점을 알고도 “좋은 게 좋은 거다” “굳이 내가 왜?”라며 외면했던 작은 것들이 모여 눈덩이처럼 불어나 망국의 산사태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의식과 문화가 중요하다. 현장을 아는 실무진이 직업관을 갖고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인정하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당장은 불편하겠지만 원칙을 잡아나가는 과정과 시간을 이해해줄 수 있는 국민성과 문화를 만들어야한다.

그리고 꼭 빼먹지 말아야할 것은 책임을 묻는 과정이다. 그들에게 반성하고 새롭게 일어설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또 다른 범죄를 낳게 된다. “만약 …했더라면”이라며 유야무야 넘어가기에는 그들과 우리는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정지연 경제금융부장 jyj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