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취약계층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었던 카드업계 사회공헌기금이 IC카드단말기 전환 자금으로 용도 변경이 추진되면서 곳곳에서 파열음이 일고 있다. 사회공헌기금이라는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단말기 교체 사업에 끼워 맞춰 예산을 강제로 투입하려다보니 집행 전부터 잡음이 거세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초 영세가맹점 IC카드단말기 보급을 위해 카드업계 사회공헌기금을 최대 1000억원 수준까지 만들어 IC단말기 전환에 투입하라고 카드사 사장들에 요구한 바 있다.
카드사는 2011년, 매년 사회공헌 목적으로 200억원씩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공언했지만 1년이 채 가지 않아 기금 추가 납부는 뚝 끊겼다. 현재 남아있는 기금은 약 50억원 남짓이다.
용두사미가 돼버린 카드사의 행태도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자금을 당초 목적이 아닌 용도에, 그것도 1000억원이나 되는 자금을 조성하라고 강압적으로 요구한 금융당국의 행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금융권은 사회공헌기금은 명분에 맞게 저신용자와 사회취약계층을 위해 운용돼야한다는 입장이다. 영세가맹점에 IC카드단말기를 무상으로 보급하는 것이 과연 사회공헌 활동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기금조성과 운영은 사회공헌위원회가 주도하고 있다. 외부 위원 3명과 카드사 대표 7명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의 요구에 위원회는 진퇴양난이다.
당국의 엄포에 카드사는 마지못해 수용 의사를 밝혔지만, 한달이 지나지 않아 1000억원의 기금을 전부 내놓을 수는 없다며 ‘버티기’로 자세를 바꿨다.
한 카드사 고위 관계자는 “문제만 터지면 카드사에 책임을 지우려는 금융당국의 행태가 지나치다”며 “IC카드단말기 관리주체가 밴(VAN)사인 만큼 자금을 나눠서 내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밴사도 분란이 일어나기는 마찬가지다. 일부 밴사는 단말기 교체사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밴 수수료 추가인하 금지와 본인확인 생략(No CVM) 거래서비스 도입을 유예해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금융당국의 무리한 자금조성 계획에 업계 분란만 가중되고 있는 셈이다.
IC카드단말기 보급사업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카드 위변조 사고는 99%가 판매시점관리시스템(POS)을 보유한 대형가맹점에서 발생하는데, 전체 가맹점 대비 거래가 10%도 채안되는 영세가맹점 우선으로 단말기 보급 사업을 펼치는 게 주객이 전도됐다는 주장이다.
한 밴사 관계자는 “해커가 결제 건 수가 일평균 20건도 채 안 되는 영세가맹점을 해킹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며 “고객정보가 쌓여있는 대형가맹점이 우선인데, 보급 사업은 엉뚱하게 영세가맹점에서 먼저 진행한다니 정책의 앞뒤가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