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표준화와 능률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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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의 의미를 처음 배웠던 때가 기억난다. 초등학교 체육시간이었다.

선생님이 한 친구를 가리키며 “○○○를 기준으로, 전체 좌우로 정렬”을 외쳤다. 우리가 옆 친구와의 간격을 벌리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때 선생님이 큰 소리로 ○○○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기준이라고. 전체가 너를 중심으로 움직이지, 기준은 절대 움직이지 않는 거다.” 그 친구는 우리가 계속 옆으로 다가오는 친구들과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흙먼지를 마시며 이동할 때도 손가락 하나 움직일 필요 없이 “기준!”이라고 외쳐 자기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기만 하면 됐다.

그 기준이 표준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생활 전반에 자리하고 있다. 세탁기,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이나 과자, 분유 같은 식료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ISO인증 획득과 KS마크는 대표적인 표준규격 표시다. 제품과 기술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 안전이나 서비스, 국민생활 등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 국가 간 협의를 거쳐 승인된 국제적 표준을 활용하는 것도 세계적인 추세다.

표준화는 방법이나 절차 등에 대한 합리적 기준을 설정함으로써 생산 과정을 단순화시키고 능률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글로벌화된 세계시장으로의 진출과 선점을 용이하게 한다. 자연히 기술선진국들 사이의 표준화 쟁탈전은 날이 갈수록 심화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대량생산 시대에는 연구개발(R&D)을 통해 신기술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표준화까지 연결하지 못하면 결국 막대한 비용과 생산효율성 감소라는 벽에 부딪혀 세계시장 선점에 실패하게 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세계 브랜드 파워 1위 기업인 코카콜라는 일찍이 생산표준화를 이룸으로써 어느 나라에서나 제품 품질을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산설비 증설을 효율화해 표준화를 상징하는 글로벌기업이 됐다.

미래 유망산업일수록 다른 산업과의 연계 가능성이 높고, 자유무역협정(FTA)의 빠른 확산으로 특정 분야에서의 기술표준화 선점이 갖는 파급 효과가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크다. 2020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는 5세대(5G) 이동통신기술도 뚜렷한 세계적 기준과 표준기술이 제시되기 전이다. 다양한 통신기술을 이용해 대부분의 주변 사물을 활용할 수 있는 사물지능통신(M2M)이 이루어진다면 5G기술 표준화 선점에 따른 효과는 통신에 머무르지 않고 연계 산업으로 확대될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한 분야에서의 표준화 선점 실패가 미치는 파급효과 역시 장담할 수 없다. 현재까지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사용 중인 교류전력시스템에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직류전력시스템으로의 표준화 진행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가전제품은 거의 모든 부품이 전기규격에 맞춰 새로 설계돼야 하는 만큼 전자·전기 부문이 강점인 우리로서는 산업 경쟁력 약화 가능성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우수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R&D와 동시에 개발 기술에 대한 표준화 작업이 필수 과정이 돼야 하며, 정부는 자체적으로 표준화를 진행할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 지원과 국제표준화 인프라 강화에 힘써야 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의 보유 여부가 해당 국가의 스포츠국력을 나타내듯 표준 분야에서도 우리가 개발한 기술이 국제 표준으로 채택되거나 정책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주요 국제표준화기구 내 한국인 전문가의 수와 활약이 중요하다. 또 표준화작업에 더 다양한 전문기관과 기업 인력이 참여할 수 있는 운영체계로의 개선이 시급하다.

김홍연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창의산업평가단장 hykim@kei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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