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실리콘밸리 달구는 미래 자동차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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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의 경기 호황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불붙기 시작한 소프트웨어 산업에 기인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수많은 소프트웨어 기술들은 제조, 유통, 교육, 의료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여러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동차 분야만 해도 전세계 완성차 업체 상위 12곳과 유관 부품 업체들이 실리콘밸리의 앞선 소프트웨어 기술을 습득하고자 현지 연구소나 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스탠포드대학의 리더십은 비단 기술 분야에만 국한 되어 있지 않다. 멀지 않은 미래에 상용화 예정인 자동운전(Automated driving)분야만 해도 좋은 인재들이 모여 기술 뿐 아니라 법, 사회제도, 보험제도,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토론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들이 미국 정부의 정책에 반영돼 하나씩 실행될 수 있도록 각 분야 전문가들간의 만남의 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다. 지난 3월에는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자동차기술 워크숍이 SCL(Stanford Center on Longevity)과 CARS 공동 주최로 열리기도 했다. 사실 이런 기술리더십은 미국 사회 전반, 특히 실리콘밸리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하나의 문화적 속성인 듯하다. 큰 사회적 이슈가 생기면 열린 토론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가고 합의된 결과는 신속히 법과 제도에 반영해 모든 사람들이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그럼 과연 한국에서는 이런 문화가 자라날 수 있을까? 자동차 분야만 놓고 얘기하자면 안타깝게도 현 상황은 꽉 닫혀 있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듯 현재 한국 자동차 산업 생태계는 영역 다툼이나 주도권 싸움으로 왜곡돼 있다. 새로운 분야 기술은 자동차와 관련성이 적어 보인다는 이유로, 원천 기술은 양산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기 일쑤다. 혁신적인 수많은 아이디어들도 당장의 돈벌이와 관련이 없어 보이면 연구 자체에 대한 지원이 중단되니 대학이나 국책연구소에서 나오는 좋은 아이디어들도 수요처를 못 찾고 고사된다.

대학은 언제부터인가 업체들을 위한 인력 조달 기능을 담당하는 하청 기관으로 전락했고, 대형 국가 연구비는 특정 업체에 편중돼 관리 기관 조차 끌려 다닌다. 법과 제도는 각종 규제와 보수적인 사고에 막혀 새로운 패러다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미래 기술의 화두인 자율주행자동차가 서울 도심을 돌아다닐 날이 올 수 있을까 싶다. 과연 자동차 생산 세계 5위국이 맞을까 싶은 정도로 연구 환경은 열악하다.

우리 연구개발 상황이 이렇게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세계 자동차 기술의 큰 흐름은 전기·전자기술 및 IT에 대해 더 큰 기여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자율주행자동차가 모든 자동차 회사들의 중장기 개발 목표가 되면서 전기·전자기술 및 IT에 대한 수요는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특히 센서, 통신, 제어, 소프트웨어 기술에 대한 수요가 크고, 관련 전공자들에 대한 채용이 갈수록 늘고 있다.

미래 자동차 기술의 승패는 소프트웨어 기술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한국자동차용 소프트웨어 기술은 양산차 기준 자립도가 10% 미만이라는 통계만 보더라도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이 험난함을 알 수 있다. 소프트웨어 기술은 여러 분야 전문가들 간의 소통과 융합을 전제로 발전할 수 있다. 소위 ‘분야별 전문지식(Domain specific knowledge)’을 근간으로 이종 학문간 융합이 이루어질 때만 성공할 수 있는 분야다. 세계 유수 자동차 회사들의 연구소가 왜 실리콘밸리에 있고 그 회사들이 스탠포드대학의 제휴 프로그램(Affiliates Program)에 매년 수천만원의 회비를 내면서 회원사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생각한다면 우리의 갈 길도 윤곽이 잡힐 것이다.

서승우 서울대 교수(지능형자동차IT연구센터장) sse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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