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불편한 진실과 회장 보고시스템

“홍보란 윗사람 말을 12시간 내로 아래로, 말단의 정보를 24시간 내지 48시간 내로 회장까지 전달되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삼성 신입사원 교육자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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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최고결정권자의 결단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성장했다. 그 결단은 바로 24시간, 48시간내로 회장에게 전달되는 다양한 정보와 회장의 냉철한 판단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장 입에는 쓴 ‘불편한 진실’을 담은 언론보도도 최고결정권자의 판단을 도왔다.

하지만 ‘회장단에 전달되는 48시간 시스템’에 치명적인 오류가 감지된다. 역설적인 것은 삼성의 정보 유통 능력과 사회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이 불편한 진실을 은폐할 수 있는 시스템 오류의 바이러스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무소불위의 힘을 구사하는 자만에 빠진 일부조직에서 ‘이 정도는 우리 선에서 조용히 해결할 수 있다’는 지엽적 판단이 고개를 들면 정보 흐름에 병목현상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룹 전체의 이미지 훼손을 낳게 된다. 최고결정권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반(反) 삼성 정서’가 국민 사이에 또아리를 틀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컨대 휴대폰 부품 하청업체들의 불만과 상생 노력이 부족하다는 정부의 질책은 곤혹스러울 뿐이다.

과거 다양한 시각을 접하는 통로였던 언론도 삼성이 조직적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최고결정권자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 ‘삼성 대변인’을 자처하는 일부 언론 기자와 언론 매체를 옮겨가며 오로지 삼성의 논리만을 그대로 전파하는 일부 교수, 일부 포털 운용자들, 블로거들도 같은 범주에 포함된다.

이들이 생산해낸 기사와 칼럼은 일부 임원들의 입을 대신해 회장에 면피 보고용으로 쓰이곤 한다는 비판도 있다. 오죽하면 ‘분야별 삼성 장학생’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까. 일시적으로 회장의 판단을 흐릴 수는 있으나, 그에 따른 국민정서와의 괴리는 고스란히 회장 부담으로 남게 된다.

일생 동안 온갖 유혹을 뒤로 하고 사업보국의 신념을 지켜낸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은 ‘올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갈 때 언론이 그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삼성 60년사]에서 발췌) 이건희 회장의 언론관도 선대회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런데 지금의 삼성은 어떤가. 삼성의 일부 조직은 회장의 언론관을 무색케 한다. 사회 전반에서 듣고 싶은 말만 들리도록 조직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일부 조직원들도 면피용 봉합에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의문이 생긴다. 과연 잇따르는 언론과의 불화와 그 배경에 대한 보고가 ‘가감 없이’ 회장에게 전달됐을까. 본지와의 사례를 보면서 그 의문은 더욱 커진다. 커뮤니케이션(홍보)팀이 아닌 사업부서 혹은 법무팀이 강력히 주장해 취재기사를 ‘무조건 삭제하라’고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자 ‘사과문을 방불케 하는 정정보도’를 청구한 결정은 내부 일부인사들조차도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고 한다.

근래에는 일부 매체에 ‘사죄한다’는 표현을 요구하는 정정보도문을 보내 관철시킨, 힘을 과시한 사례도 있다. 도대체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삼성은 국민기업으로서 사회로부터 믿음을 얻고 사랑 받을 수 있어야 한다(2012년 이건희 회장 신년사)”. 혹시라도 일부 경영진이 자기 보신을 위해 이건희 회장의 품질경영과 시스템경영 방침을 거스르고 있다면, 이참에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