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애니콜 신화와 갤럭시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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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하인리히 법칙’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대형 사고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사고와 징후들이 존재한다는 게 골자다. 중상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경상자가 29명, 부상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것이다. 소위 ‘1 대 29 대 300 법칙’이다.

삼성전자가 엊그제 미국에서 갤럭시S5 카메라 결함을 시인했다. 미 최대 이동통신사 버라이즌 가입자가 23일부터 갤럭시S5 카메라 결함을 지적한 지 사흘 만이다. ‘관리의 삼성’으로서는 인정하기 싫은 일이 벌어진 셈이다. 세계 휴대폰 1위 기업의 명성에도 오점이 남게 됐다. 애니콜 신화로부터 이어진 삼성의 품질제일주의에도 흠집이 나게 생겼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만약 이번 카메라 품질 불량 문제가 확산된다면 삼성전자는 민낯을 드러내게 된다. 버라이즌이라는 특정 이통사에서만 발생한 SW 결함이 아니라, 하드웨어 품질 불량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전 인지 여부도 관심사다. 버라이즌 고객이 문제를 제기하자, 전격적으로 교환 정책이 나온 탓이다. 그럴 가능성은 적겠지만 미리 이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오해도 살 상황이다.

그래서일까, 삼성은 침소봉대를 우려하는 모습이다. 삼성전자가 밝힌 공식 입장을 요약하면 “불량이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초기에 생산된 모델에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지역에서 판매된 ‘매우 소량’만의 문제라고 진화에 나섰다. 언제 어디 공장에서 생산된 갤럭시S5이며, 국가별로 수량은 얼마나 되는지 아직 정확한 수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일부 품질 오류 정도로 그렇게 큰 비난을 들을 일은 아니라는 인식이 엿보인다.

이번 카메라 품질불량 문제를 접하면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가 지나치게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제를 파악하고도 제대로 봉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아니면 파악하고도 그 책임이 두려워 보고체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은 것은 아닌지 하는 것이다. 애니콜 신화와 스마트폰 시장 1위 고지에 오른 삼성전자가 베이컨의 동굴의 우상처럼 소위 ‘갤럭시 우상’을 만난 건 아닌가.

지금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더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기 이전에 만난 ‘전환의 계곡(Valley of transition)’에 서 있다. 하지만 삼성의 조급함은 계곡을 건너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혹은 자신을 혁신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삼성의 적은 어쩌면 애플이 아니라 조직 내에 있다. 삼성이 언제부터 ‘극히 소량’의 품질 불량을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았던가. 하인리히 법칙의 잣대로 보자. 갤럭시S5 품질 불량 문제를 제기한 버라이즌 고객 5명이 나오기까지는 버라이즌에서만 145명의 경상자, 1500명의 잠재적 부상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1995년 8월이 기억난다. 삼성 휴대폰이 당시 세계 1위 모토로라를 누르고 국내 1위에 오르면서 ‘애니콜 신화’의 전기가 마련됐다. ‘산악지형에 강하다’라는 모토를 토대로 전국의 산에서 비교통화 실험을 했던 결과였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결과적으로 갤럭시 역시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 달성에 성공했다. 눈여겨 볼 점은 상당수 전문가들이 삼성 스마트폰의 강점을 기술혁신보다는 ‘마케팅’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품질관리에서부터 생산에 이르는 전반적인 안전진단, 경영과 기술, 나아가 자기혁신의 시스템을 다시 한 번 점검해봐야 하지 않을까.


김원석 글로벌뉴스부 부장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