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정부는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차법)’을 제정했다. 장애인의 권익을 보호하고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을 실현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법 제정 만 7년이 지났음에도 장애인들은 여전히 차별과 법의 사각지대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장애인들이 우리 사회 일원으로서 보다 당당하고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그들의 경제활동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편의서비스 개발이 시급하다.
제34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현주소를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해봤다.
#. 시각장애를 가진 A씨는 최근 은행에 전자금융 보안등급 상향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OTP(일회용비밀번호) 생성기 이용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OTP 생성기는 음성지원이 되지 않아 시각장애인이 사용할 수가 없다. 결국 그들은 OTP만이 지원하는 보안 1등급 전자금융서비스를 평생 쓸 수 없다는 얘기다.
#. 지체장애로 몸이 불편한 B씨는 자금거래를 위해 은행 365자동코너를 방문했다. 그런데 ATM이 계단 위에 있어 혼자 힘으로는 접근할 수가 없었다. 직원의 도움으로 15분 만에 겨우 들어갔지만 휠체어를 움직이기에는 공간이 너무 좁아 결국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장애인들이 생활 속에서 가장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차별을 꼽으라면 십중팔구 ‘금융서비스’를 꼽는다. 장차법 제정 이후 금융권이 음성지원이 가능한 ATM과 전자금융서비스를 앞다퉈 내놓았지만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은행 창구 이용에서부터 카드 발급, 보험가입 등 장애인이 금융서비스에서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휠체어 지원하는 ATM 20% 수준에 그쳐
본지가 한국은행에서 입수한 ‘18개 은행의 CD/ATM 장애인 지원 현황’에 따르면 국내 전체 ATM 7만287대 중 시각장애인(겸용) ATM은 6만742대로 전체의 86.4% 수준이었다. 상당 부분 개선됐다.
문제는 휠체어를 타고 이용할 수 있는 ATM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 전면 접근이 가능한 ATM은 1만2170대로 17.3%, 측면 접근이 가능한 ATM은 1만9502대로 27.7% 수준에 그쳤다.
이 중 상당수는 음성지원서비스용 이어폰 단자를 막아놓거나 일반 ATM 사이, 협소한 공간에 배치해 사실상 이용이 어려웠다.
◇인터넷·모바일 등 전자금융 거래, ARS 이용은 ‘그림의 떡’
스마트폰 등 다양한 IT기기들이 등장하면서 비대면 금융 채널 사용도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 개선은 멈춰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 ARS(전화) 등으로 금융서비스를 완료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대표 9개 은행의 모바일뱅킹 서비스 중 4개 은행시스템은 장애인 이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카드사도 마찬가지다. 5개 카드사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은 로그인부터 이벤트 확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 이용을 지원하지 않았다.
터치스크린 방식의 스마트폰은 점자 지원 기능이 없기 때문에 장애인이 이용하기가 어렵다. 음성지원서비스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운용체계(OS)를 바꿀 수도 없는 상황이다. 대부분이 구글이나 애플 등 외산 OS를 사용하다 보니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연계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뱅킹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계좌를 만들고 인증을 받았지만 실제 사용 과정에서 지원이 안 돼 무용지물이다. 웹접근성 지침을 준수하지 않은 금융사도 부지기수다.
◇완전 판매를 위한 지원 서비스 지급
신용카드 또한 마찬가지다. 수많은 카드 중 점자카드 발급이 되는 카드는 극소수다. 카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없고, 점자화된 카드만 획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은행에서 사용하는 여러 문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은행 대출을 받을 때 필요 서류만 열 가지가 넘는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은 약관을 읽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내용을 직원이 다 읽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때문에 불완전 판매가 횡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전자문서, 음성 지원 서비스를 여러 문서에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강완식 웹접근성평가센터 소장은 “정부와 금융사가 장애인이 금융을 이용할 수 있도록 모든 내용을 종합한 매뉴얼을 제작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IT기기의 발달로 스마트 금융 등 비대면 채널에서의 금융 이용에 다양한 장애인 편의서비스를 지금부터라도 제조사와 금융사, 금융당국이 머리를 맞대고 실행방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표1]CD/ATM 장애인 지원 현황(2014년 1월말 기준)
(자료: 한국은행 산하 금융정보화추진협의회)
(*국내 CD/ATM 7만287대 기준. **대상기관은 KB국민, 우리, 신한, 하나, 외환, SC, 씨티, 농협, 농협중앙회, 수협, 산업, 기업, 부산, 대구, 광주, 경남, 전북, 제주은행 등 총 18개사)
[표2]장애인차별금지 관련 법령 중 금융 분야 조항
(1)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2)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4조 (정보통신·의사소통에서의 정당한 편의 제공의 단계적 범위 및 편의의 내용) ① 법 제21조 제1항 전단에 따라 장애인이 접근·이용할 수 있도록 수화, 문자 등 필요한 수단을 제공하여야 하는 행위자 등의 단계적 범위는 별표 3과 같다.
*정보통신·의사소통에서의 정당한 편의제공의 단계적 범위 (제14조 제1항 관련)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