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단말기 유통법`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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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는 이동통신 사업자 영업정지 후폭풍이 거세다. 이통사의 과도하고 불법적 보조금 지급으로 인해 정부는 이통 3사에 45일씩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으나, 과열된 시장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영업정지로 인해 중소형 단말기 제조업자나 대리점·판매점이 생계 위협을 받는 등 이통시장이 전반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이번에야말로 혼탁한 이통 시장을 정상화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동참해 이통 3사도 자율적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각사 마케팅 임원이 시장안정화를 위한 공동선언문을 채택하고, ‘공동 시장감시단’을 꾸리는 등 자정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공짜폰’ 등 구호로 소비자를 속이는 허위과장광고를 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유통점 인증제’ 도입을 통해 실제 판매현장에서의 서비스 경쟁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통사의 이러한 자정노력은 큰 의미가 있고 바람직하지만, 지난 10여년간의 경험을 돌이켜볼 때 시장안정화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통사가 보조금을 통해 경쟁을 하게 되는 것은 현재의 이통시장 구조상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이동통신 가입자는 대략 5500만명으로 인구 1인당 한 대 이상씩 단말기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시장이 포화된 상태에서는 상대방 가입자를 뺏어오지 않는 한 점유율을 높일 수 없기 때문에 이통사는 보조금을 통한 가입자 뺏기에 사활을 걸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해결방안이 필요한데, 현재 제정을 추진 중인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 해결방안이 될 수 있다.

통상 이통사는 요금, 품질, 보조금 세 가지로 경쟁한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품질 혁신은 기대하기 어려우며, 사업자 간 품질 차별성이 점차 낮아짐에 따라 실질적으로는 요금 또는 보조금으로 경쟁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통사는 수익이 떨어지는 요금경쟁보다 보조금 경쟁을 선호하게 된다.

최근 LG유플러스가 무제한 LTE 데이터 요금제를 출시, 요금경쟁을 촉발시킨 점은 긍정적이나, SK텔레콤과 KT가 유사한 요금제를 출시함으로써 요금 차별성이 사라져 다시 보조금 경쟁으로 회귀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따라서 이통사가 보조금이 아닌 요금으로 경쟁할 수 있는 제도적 틀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를 위해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 주목받는 것이다.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기본적 취지는 보조금을 지급하되,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지급하자는 것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 ‘보조금 공시’를 통해 소비자는 어느 대리점·판매점에 가더라도 예측가능하고 부당한 차별 없이 단말기를 구매할 수 있게 된다. 지금처럼 같은 매장에서 오전과 오후에 따라 수십만원씩 차이나고, 새벽에 공동구매 사이트에 스폿성으로 올라오는 게시판을 검색한 후 브로커를 통해 단말기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전자제품처럼 합리적인 가격예측 범위에서 구매할 수 있게 된다. 또 ‘보조금 또는 요금할인 선택제’를 통해 보조금을 받지 않는 사람에게 추가적인 요금할인이 가능해져 소비자는 단말기를 오래 사용할 유인을 가지게 된다.

이럴 경우 소비자는 요금할인뿐 아니라 단말기 구입비용도 절감하게 돼 통신비 부담을 덜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소비자는 보조금이 아닌 가격에 의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고,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에 따라 이통사는 요금, 제조사는 가격을 통해 경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20여년간 이통시장 역사를 살펴보면 동일한 패턴이 반복돼 왔음을 알 수 있다. 불법적이고 과도한 보조금으로 인해 혼란이 발생하면 당국이 제재를 하고, 제재에 따라 일시적으로 시장이 안정되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시장이 과열되는 패턴이 반복돼 왔던 것이다. 이제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며, 이를 위해 구조적인 해결방안이 시급하다. 이것이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이유다.

김병운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교수 bukim@u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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