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 드라이브]재규어 XJ 3.0 디젤 LW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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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뉴 XJ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재규어는 그저 중절모 느낌 가득한 얌전한 자동차였다. 네 개의 동그란 전조등이 클래식함의 극치를 이루던 그 차 말이다. 기억 속에는 은색 재규어 한 마리가 곧 뛰어오를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그런데 웬걸, 알고 보니 재규어는 스포츠카 브랜드였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양산차에 등극(XK120)했고 여러 차례 자동차 경주대회에서 우승한 스포츠카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사실은, 조용하기만 하던 중년 신사가 절정의 무술 고수임을 아는 것만큼이나 놀라움을 주었다. 어쨌든 재규어는 요즘 한국에서 잘 나간다. 작년에 1901대를 판매해 전년보다 반 이 상 더 팔았다. 1000대 이상 팔린 브랜드 가운데 랜드로버를 제외하고는 단연 최고의 성장세다. 올해도 20% 넘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구별짓기’로서의 고급 수입차를 원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넘쳐나는 ‘흔한’ 브랜드에서 눈을 돌린 곳이 재규어인 것은 아닐까.

재규어 중에서 그나마 대중적인 XF 다음으로 많이 팔리는 모델이 XJ, 그 중에서도 3.0 디젤 롱휠베이스(LWB)다. 올해 1월 초 2014년형이 국내 출시된 이 차는 2993cc에 1억4100만원이라는 기죽이는 가격에도 석 달 만에 41대가 팔렸다. 재규어의 대형 세단 부문을 확실하게 이끌고 있는 모델이라 할 수 있다. XJ는 모두 8개의 세부 모델로 구성됐는데, 올해 들어 3월까지 모두 92대가 팔렸다. 생각해보면 국내외 수많은 고급차 모델 가운데 하나로 선택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이정도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매일 한 대씩 팔리는 꼴이니, 이쯤 되면 수입 대형 세단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의 비교목록에 재규어 XJ가 꼭 들어간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전통은 짐이 될 수 있다. 아마도 XJ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야 했던 2009년의 이안 칼럼(재규어 수석디자이너)이 그런 고통에 밤잠을 설쳤을 것 같다. 이미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완벽한’ 전통 위에 무엇을 더하고 빼란 말인가. 그렇게 5년 전 처음 등장한 뉴 XJ의 모습은 아주 조금만 바뀐 채 2014년형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웅장함과 중후함, 우아함이 새로운 XJ를 표현하는데 적절한 어휘다. 크롬 도금된 그물망 모양의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은 이 차의 백미다. 적절하게 배치된 곡선은 눈을 즐겁게 한다. 이안 칼럼은 성공한 것일까? 시간이 모든 것을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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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뉴 XJ 실내

실내는 전체적으로 영화에서 보던 고급 요트의 운전석을 연상케 했다. 고급스러운 실내를 보고 있노라면 딱히 다른 비유거리를 찾기가 어렵다. 원목과 고급 가죽을 수작업으로 완성시킨 인테리어는 꼭 재료와 제작법을 알아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풍기는 분위기 때문에 정말로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실내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빛’이다. 계기판이라든지 센터페이서, 뒷좌석 전용 LCD 모니터 등 빛이 필요한 곳에는 어김없이 파란색과 녹색을 섞어놓은 듯한 묘한 빛이 나오는데, 어둠 속에서 불을 뿜는 동물 재규어의 눈빛 같아서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직접 앉아보지는 못했지만 이 차의 뒷좌석은 재규어 측이 시간 날 때마다 강조하는 ‘비즈니스 클래스’ 리어 시트가 적용됐다. 뒷좌석으로는 드물게 최대 14.5도 기울어지며, 앞뒤도 103㎜까지 조정 가능하다. 마사지도 된다. 귀한 어른을 세 시간 정도 모셨는데, 편안하게 주무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이얼 방식의 전자 변속기는 무척 편리했다.

이 차를 타고 정말로 놀란 건 연료가 디젤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에게 이건 말이 안되는 일이다. 어떻게 고급차에 디젤을? 아무리 디젤 기술이 좋다 한들 승차감이 생명인 고급 세단에 디젤을 적용했다는 게 쉬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차는 단순히 디젤 엔진을 얹었다 정도가 아니라 조용하고 잘 달리는데 연비까지 괜찮았다. 아이들이 뛰어노는데 층간소음이 일어나지 않는 느낌이랄까. 그러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우렁찬 엔진음은 확실하게 전달됐다. 6기통 터보 디젤 엔진은 최고출력 275마력, 최대토크 61.2㎏.m의 힘을 낸다. 100% 알루미늄을 사용한 차체는 1910㎏으로 가벼운 편이어서 민첩한 주행을 돕는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 도달 시간은 6.4초, 안전최고속도는 시속 250㎞이며 복합연비는 12.4㎞/ℓ에 달한다. 고속도로 연비는 무려 15㎞/ℓ. 5미터가 넘는 거구를 생각하면 훌륭한 수준이라는 판단이다. 82리터짜리 연료탱크를 가득 채우면 우리나라 웬만한 곳은 왕복이 가능하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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