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핵비확산·핵안보 지혜로 대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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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흔히 ‘원자력’ 하면 원자력발전소를 떠올린다. 신입 연구원 시절, 나 또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렇기에 원자력연구소에 입소해 R&D 업무가 아닌 핵비확산에 관한 과제를 맡게 되었을 때 내심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지난 30년간 얻은 결론은 인식의 진화를 통한 변화였다.

“지식이 특정한 이론을 배우는 것이라면 지혜는 그것을 활용하는 역할을 한다. 원자력발전을 연구하고 건설하는 것이 지식이라면, 원자력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그것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판단은 지혜에 속한다. 그리고 핵비확산과 핵안보는 바로 지혜의 차원이다.”

흔히 원자력을 말할 때 ‘야누스의 얼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이는 원자력이 평화적으로 사용될 때는 인류의 삶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악용되면 무서운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핵무기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설립해 각 회원국이 핵물질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제 마련을 촉구하는 한편, 핵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공동으로 모색해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원자력산업 규모가 크고 해외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사소한 실수가 원자력산업 전반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이 방면에서 관심을 더욱더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원자력 진흥과 핵비확산 및 핵안보 분야에서 이미 세계적인 모범국가로 손꼽힌다. 30여년 전 턴키방식으로 원전을 도입한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적 평가는 단지 ‘동북아의 개발도상국’일 뿐이었다.

지금은 23기의 원전을 운영하며 해외에 원자로 및 부품을 수출하는 세계 5위의 원자력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지난 2012년에는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하는 한편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교육훈련센터를 당초 국제사회에 약속한 대로 올해 초 개방해 원전 개도국과 우리나라의 선진 기술과 경험을 공유하는 등 달라진 국제위상에 따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

세계적인 핵물리학자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미국 핵과학자회보를 통해 우리나라를 가장 진보한 원자력국가로 꼽으며 국제사회로부터 핵무기 개발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에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을 성공모델로 삼으라고 지적한 것도 바로 우리의 노력을 국제사회가 인정한다는 본보기다.

이제 남은 것은 이와 같은 국제적인 인정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는 핵비확산 및 핵안보 관련 연구와 인력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본다. 흔히 원자력 진흥과 핵비확산·핵안보를 ‘평화적 원자력 이용의 두 바퀴’에 비유를 한다. 두 바퀴 중 어느 하나라도 폐물이 되든지 고장나면 그 수레는 사용할 수 없다. 또 두 바퀴의 탄력이 적당하게 균형이 맞아야 좋은 것은 당연하다. 어느 한 쪽이라도 더하거나 덜하면 균형이 깨지고 오래지 않아 문제가 생기게 된다. 핵비확산·핵안보라는 바퀴는 원자력진흥이라는 다른 쪽 바퀴에 비해 이제껏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원자력계 종사자 중 인력의 90% 이상이 원자력진흥 분야에 몰려 있다. 이제는 다른 쪽 바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수레의 두 바퀴는 역할은 각각 다르지만 지향점은 같다. 핵비확산과 핵안보의 궁극적인 목적은 원자력이 비평화적 용도로 이용될 경우 인류에게 가져올 위협 요인을 극복하자는 것이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제한하자는 것이 아니다.

‘핵비확산 및 핵안보 분야의 지혜로운 길잡이’로 대한민국이 우뚝 설 그날을 기대해 본다.

최영명 원자력통제기술원장 ymchoi@kinac.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