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MIT에서 만난 창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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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에 접촉하고 화면에 대면 그 사물이 그대로 그려지는 디지털 붓, 과거의 나와 함께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 뇌신경과 연결돼 실제 다리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의족, 얼굴로 감정을 표현하고 학습할 수 있는 로봇….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면이지만 이것은 세계적인 융합연구소인 MIT 미디어랩이 현재 개발 중인 연구 프로젝트들이다. 이 연구소는 멀티미디어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네그로폰테, 위스너 전 MIT 총장, 인공지능(AI)의 창시자 민스키 등이 1985년에 설립했으며 가상현실, 3차원 홀로그램, 유비쿼터스, 웨어러블 컴퓨터 등의 개념이 모두 이 연구소에서 나왔다.

얼마 전 외국인투자 유치를 위한 미국 출장길에 MIT 미디어랩에 방문해 연구시설을 둘러보고,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어 낸 훌륭한 연구성과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규모가 크지 않은 MIT 미디어랩이 어떻게 이처럼 훌륭한 성과를 창출할 수 있게 되었는지 궁금했던 차에 몇 가지 눈에 들어오는 특이한 점들이 있었다.

첫째, 상상력과 창의력을 중요시하는 연구 분위기다. 기본적으로 MIT 미디어랩은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추구하지만 연구자들은 전통적인 학문영역에 얽매이지 않고, 독창적인 아이디어(Crazy Idea)를 현실화하는 데 중점을 둔다. 연구 프로젝트를 선정할 때도 상업성이나 실현가능성보다는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새롭고 특이한지(Novelty)를 최우선 기준으로 평가한다. 한마디로 특이한 아이디어들을 갖고 있는 ‘괴짜’들이 모여 있는 연구소인 것이다.

둘째, 소통과 융합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도록 하는 개방적인 연구환경이다. MIT 미디어랩은 모든 방의 문과 벽이 투명한 유리라 연구자들은 항상 누가 어디에서 볼지 모르는 상황에서 연구를 하게 된다. 또 연구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공간은 칸막이 없이 사방이 뚫려 있어서 언제든지 연구자들 간에 토론과 소통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2층에 올라가 보니 내부의 모든 연구공간이 한눈에 들어와서 어디에서 어떤 연구가 진행되는지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MIT에 있는 수많은 건물들이 모두 지하통로로 연결돼 있어서 언제든지 지하를 통해 다른 연구소로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개방적인 연구환경이 MIT의 뛰어난 연구성과를 뒷받침해온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셋째, 연구장비가 아닌 사람에 대한 투자다. MIT를 방문하기 전에는 연구소 내부에 값비싼 최첨단 기기가 가득 차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연구소에는 연구에 꼭 필요한 장비만 있었고, 오랫동안 대를 이어 사용한다고 한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새로운 장비가 필요하게 되면 연구자들이 직접 장비를 만들어서 사용하는 때도 많다. 오래된 연구장비들과 널려 있는 실험도구, 회의탁자 등을 보면 최첨단 연구실이라기보다는 정리되지 않은 창고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간담회에서 만난 한인 과학자들도 이구동성으로 ‘연구는 사람이 하는 것이지 연구장비가 하는 게 아니다’고 했다. R&D 프로젝트를 할 때 최신 연구장비부터 새로 구입하는 한국의 연구 풍토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기업이나 기관들로부터 받은 기부금들의 대부분은 장학금으로 지급돼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연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외부와의 협업(Collaboration)이다. MIT 미디어랩은 기업과 기관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500만달러 이상 기부금을 내는 기업은 연구자를 파견할 수 있으며, 연구성과를 기업에서 상용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삼성, LG, 현대차 등 우리 기업들도 이곳에 연구자를 파견 중이다. 또 연구자들의 창업을 적극적으로 유도해 미디어랩에서 창업한 회사가 140여개에 달한다.

이러한 적극적인 산학연 협력을 통해 인류의 생활을 바꾸는 혁신적인 기술이 상용화를 통해 대중적인 기술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MIT 미디어랩에는 지금도 약 30개의 연구팀이 350여개의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꿈을 꾸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로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는 MIT 미디어랩은 ‘상상력, 창의력, 소통, 융합, 개방, 사람, 협업’ 등의 키워드를 제시해 ‘창조경제’를 통해 재도약을 준비 중인 우리나라에 많은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다.

김재홍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jkim1573@moti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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