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의회가 ‘망 중립성’을 법으로 보장하기로 했다. 네트워크 인프라를 가진 통신사가 어떠한 인터넷 서비스에도 과금·차단·차별할 수 없으며 시민의 자유로운 인터넷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신 업계가 강력 반발하고 있어 오는 가을까지 이뤄질 최종 법안 승인을 앞두고 격전이 예상된다.
6일 AP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은 EU 의회가 망 중립성 보호 조항을 포함하는 통신개혁 법안을 채택했다고 보도했다. 28개 EU 국가의 통신업 규제를 정비 중인 EU는 이날 국가간 로밍 요금 폐지와 망 중립성 보호, 통신사 주파수 분배 방안 등을 담은 법안을 압도적 표 차이로 통과시켰다.
법안은 오는 10월 열릴 EU 협의회(Council of the European Union)의 최종 승인을 거쳐 유럽 전역에서 법적 효력을 갖는다. 법안을 발의한 닐리 크로스 EU 집행위원회 부의장은 “위원회가 2014년 말까지 최종 승인을 완료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뜨거운 감자는 역시 망 중립성이다.
망 중립성을 법으로 보호하는 나라는 네덜란드와 슬로베니아 정도다. 이번 법제화가 이뤄질 경우 EU 사상 최초로 망 중립성을 법으로 보장하는 선례가 된다. 네트워크 사업자가 어떠한 이유로도 인터넷 TV·콘텐츠 사업자에 속도를 위한 추가 요금을 부과하거나, 인터넷 서비스를 차단·차별할 수 없게 된다. 국내로 치면 SK텔레콤이나 KT, LG유플러스가 카카오톡 음성통화 서비스나 삼성전자의 스마트TV 서비스를 방해하거나 막을 수 없는 셈이다. 로이터는 “구글이나 넷플릭스같은 콘텐츠 공급업체에게 통신업자가 요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고 비유했다.
중소기업과 소비자 단체는 환영했지만 유럽 통신업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콘텐츠 업체로부터 네트워크 요금을 받으면 투자가 늘고 속도와 서비스가 개선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간 동영상 스트리밍, 음악 다운로드 요금 수익을 나눠 가지며 전통적 음성통화 서비스 등의 매출 감소를 상쇄해 온 유럽 통신업 매출은 올해 5해 연속 감소가 유력하다. 루이지 감바델라 유럽통신네트워크운영사협회(ETNO) 회장은 “(이번 채택은) 잘못된 방향”이라며 “유럽 시민과 기업체에 제공될 혁신적·고품질 서비스가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계 통신사를 대변하는 GSM협회도 “투자를 지연하고 혁신을 막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ETNO는 이 법안으로 인해 통신업계가 2020년까지 70억유로(약 10조1400억원) 손실을 입는다고 추산했다.
최종 승인 전까지 도이치텔레콤, 텔레포니카, 텔레콤 이탈리아 등으로 구성된 ETNO 로비 그룹의 공세는 거세질 전망이다. AP는 “10월 이전까지 눈보라 치듯 로비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법안은 망 중립성뿐 아니라 모바일 통신·인터넷 광대역 계약시 소비자를 보호하거나 모바일 사업자 승인 발매를 표준화 하는 내용도 포함한다. 유럽 통신업을 ‘단일 시장’으로 묶으려는 과정이다. 궁극적으로 미국과 아시아에 뒤처진 유럽 통신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법안에 따르면 EU 국가간 로밍 요금은 2015년 12월 이후 전면 폐지한다. 이 법안을 “EU가 시민에게 바치는 법안”이라 묘사한 크로스 부의장은 “모든 유럽인 어디에 있는 누구라도 개방적이고 끊김없는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도록 장벽을 제거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연합(EU) 의회가 채택한 통신개혁 법안 주요 조항과 상세 내용>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