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벤처생태계를 위해서는 ‘창업-투자-기업성장-자금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를 갖추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벤처창업과 투자 자금 쪽에서는 우호적 분위기가 조성됐다. 정부 차원의 창업과 투자독려가 이어지면서 ‘제2 벤처 신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벤처캐피탈협회는 올해 벤처 신규투자와 조합결성 규모는 전년보다 10% 이상 늘어나 1조5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중소기업청은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해 올해 모태펀드 출자규모를 지난해(4126억원)보다 32.6% 증가한 5470억원으로 늘린다. 이에 따라 올해 벤처기업에 투자되는 벤처펀드도 지난해(1조5374억원)보다 30% 늘어난 2조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하지만 투자자금을 회수할 시스템은 아직도 개선할 부분이 적지 않다. 많은 투자가 이뤄져도 제대로 된 자금 회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돈맥 경화’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벤처캐피털의 원활한 투자자금 회수가 벤처투자의 선순환을 촉진하고 벤처자금이 시장으로 지속적으로 공급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라고 말한다.
◇국내 벤처캐피털 양질 회수 늘려야
우리나라 창투사의 회수는 양질로 꼽히는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보다 장외매각·상환 등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이는 M&A와 IPO를 통해 대부분의 투자회수가 이뤄지는 미국과는 큰 차이다. 미국은 IPO보다 M&A 회수 비중이 월등히 높지만 우리나라는 IPO에 대한 의존이 더 높은 것도 특징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창업투자자의 투자회수 가운데 M&A와 IPO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0.4%, 12.7%에 그쳤다. 벤처투자 문화가 성숙한 미국에서는 같은 기간 이 비중이 각각 61.4%, 38.6%다.
반면에 장외매각 및 상환(48.7%)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장외매각은 투자한 회사 지분을 장외에서 제 3자나 특정인에게 매각하는 것이다. 상환은 투자자금을 받은 기업이 대금을 다시 반환한 경우다. 이 과정에서 벤처캐피털이 수익을 낸 경우도 있지만 단순 투자회수나 저가 매각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게 협회 측 설명이다.
◇IPO 줄고 엑시트 기능 약화
우리나라 투자회수는 IPO에 대한 기대가 높다. 대부분의 기업과 캐피털이 코스닥 상장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코스닥 IPO 기업 수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투자회수 창구가 막혀있다는 것이다. 코스닥의 IPO 수는 지난 2002년 153개에 달했지만 2010년에는 76개로 줄었고 지난해에도 37개에 그쳤다.
코스닥지수와 벤처캐피털의 전체 회수금액은 대체로 정의 상관관계다. 하지만 코스닥지수는 지난 2009년 이후 거의 500선을 전후로 제자리 걸음만 반복하고 있다. 같은 기간 벤처캐피털의 투자회수금액 역시 연간 6000억원대에서 정체돼 있다.
새로운 벤처자금 회수 창구로 코넥스가 출범했지만 아직까지 제기능을 못하고 있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박진택 벤처캐피탈협회 실장은 “코스닥을 기술주 중심의 증권시장으로 복원시켜 투자회수 창구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업계의 가장 큰 요구”라며 “우회상장 요건을 완화시켜 부족한 IPO 기능을 보완해주는 안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M&A 등 중간 회수 창구도 넓혀야
우리나라 기업이 신설돼 코스닥에 상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2년 정도다. 하지만 엔젤이나 벤처캐피털이 투자후 이 기간을 기다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투자 3~5년 후에는 회수가 이뤄져야만 창투사도 사업을 영위할 수 있고 후속 투자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중간 회수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M&A다. 하지만 초기 벤처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자금과 함께 오랜 기간 경험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접목해야 한다. M&A도 엄연히 기업 성장의 한 과정으로 보는 인식전환도 시급하다.
우리나라는 M&A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적지 않다. 벤처기업 CEO도 지분 매각을 나쁜 관행으로 보는 일이 있다. 특히 대기업의 중소기업 인수를 ‘기술 빼앗기’로 해석하는 곱지 않은 시각이 많다.
장수덕 한남대 교수는 “중간회수 시장의 발달 없이는 벤처생태계의 근본적 변화는 불가능하다”며 “미국은 3~5년내 M&A를 활용한 중간회수의 비중이 70~90%에 달하지만 우리는 그 비중이 아주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벤처캐피탈협회는 중간회수 시장 활성화를 정책 당국에 건의했다. 건전한 M&A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인수합병의 절차나 요건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투자 자금을 회수하지 못해 자금난을 겪는 벤처캐피털을 위해 ‘세컨더리 펀드’를 보다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벤처캐피털이 보유한 지분을 IPO 이전에 매입하는 펀드로 정책 자금 배정을 늘려야 한다는 제안이다.
중간회수 활성화 차원에서 벤처기업이 청산 또는 M&A 되는 경우, 매각대금에서 투자자의 투자금을 우선 배분하는 준청산제도(Deemed Liquidation Preference)를 도입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