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변화를 보면 참으로 경이롭다. 삐삐를 차고 통신을 했던 시절, 긴 안테나를 세우고 카폰을 장착한 승용차에 교통순경이 무조건 경례를 했던, 지금은 웃음 나오는 그 시절이 엊그제 같다. 이제 서로 다른 분야들과 기술이 융합돼 참으로 많은 상상들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교육이 아닐까 싶다. 교육 환경도 예외 없이 대단한 변화가 진행 중이다. 교육과 기술의 융합, ICT 기반 교육이 그것이다. 이러닝으로 도시와 농촌은 물론이고 지구촌의 교육 격차가 줄어들고, 멀티미디어 콘텐츠 활용으로 교육의 효율성이 높아졌다. 디바이스나 모바일 기술, 창조적 소프트웨어 개발로 양방향, 참여형 유비쿼터스 교육이 실현되고 있다. 교육도 듣는 교육에서 질문하고 토론하는 교육, 학습자 중심 교육으로 변화한다. 디지털이 만능은 아니지만, 디지털의 장점을 활용하지 못하면 개인이나 국가의 교육 경쟁력이 뒤지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교사도 역할이 달라지고, 조금은 잠자는 시간을 줄여야 할지 모른다. 모든 학생이 무거운 책가방을 버리고 디바이스를 갖게 되면 그들의 정보 습득 능력은 교사들을 능가할 수 있다. 교사가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교사는 혼자서 모든 것을 가르쳤던 방식에서 학생들이 수집한 데이터들을 서로 토론하고 결론을 유도하는 조정자, 즉 코치의 역할이 많아질 것이다.
학생이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 적었던 학습 방법은 옛 얘기가 됐고, 디바이스와 인터넷을 활용해 그날 배울 주제에 대해 전 세계의 검증된 데이터를 찾아내는 등 참여와 토론형 학습자로 변화될 것이다. 수집되고 토론돼 정제된 데이터들을 교사와 학생이 즉석에서 전자 학습서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이런 교육 환경의 변화는 참으로 대단하며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협동하고 참여하고 토론하는 동안 학생들은 창의, 관계, 글로벌의 의미를 터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 환경의 변화에서 궁극적으로 학생들이 교육 효율성을 높이는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콘텐츠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양한 맞춤형 디지털 교육 콘텐츠다. 다른 요소가 중요치 않다는 말은 아니다. 다른 기기나 플랫폼은 궁극적으로 학생들의 교육 효율성을 높여주는 콘텐츠를 담거나 보여주기 위한 수단 혹은 인프라이기에 고민의 우선순위에서 맨 앞이 될 수는 없다.
지난 수년간 스마트 교육, 디지털 교과서 등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어졌다. 그러나 중심 화두는 늘 하드웨어였다. 콘텐츠 준비에 대한 고민은 뒷전이었고, 어떤 기기를 쓸 것인지가 항상 관심사였다. 비싼 대형 TV를 갖다 놓은들 콘텐츠가 들어 있지 않으면 아무도 보지 않는다. 하드웨어는 이미 여기저기 준비돼 선택의 여지도 많다.
우리나라에는 지금 법이 하나 필요하다. 홀대 받는 콘텐츠를 위한 법이다. 실제로 포토숍에 가서 사진 한 장을 빌려다 쓰려면 수십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교육으로 맞춤화된 수백만장의 사진이 있고, 수십만개의 동영상,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 플래시 등 교육 콘텐츠 아카이브가 구축돼도 제작 원가 이외에 완성된 콘텐츠에 대한 자산 평가는 재무제표에서 평가 받지 못한다. 은행에서도 담보로 활용되지 못한다.
물론 콘텐츠의 가치를 분류하고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표준을 정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국가가 몇 천억원 단위의 콘텐츠 펀드를 만드는 이 시점에선 콘텐츠에 가치를 부여하는 평가 기준 논의가 반드시 시작돼야 한다. 콘텐츠에 가치를 부여하는 법안은 콘텐츠 업계 전반에 생명을 불어넣는 법안이기도 하다. 3년 후쯤에는 콘텐츠도 위대한 자산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열렸으면 한다.
박기석 시공미디어 회장 kspark@sigong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