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전력이 남아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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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겨울 끝자락이다. 지난 2년간 여름과 겨울이면 단골손님처럼 찾아오던 전력위기가 이번 겨울엔 소식 없이 지나갔다. 앞으로 전력상황도 더도 덜도 말고 지금만큼만 안녕하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전력수급이 안정화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일까. 최근 에너지 업계에선 배부른 고민이 들려온다. 그동안 전력위기로 관심을 받던 에너지효율화, 에너지저장장치(ESS) 관련 사업이 다시 관심을 벗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투자업계에선 에너지 이외의 다른 투자처를 모색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불과 반 년 전만 해도 전력난을 고민했었다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다.

전력수급이 안정권에 들어선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이런 평화가 안도와 자만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2011년 9월15일 순환 정전 역시 그 시작은 넉넉한 전력수급에 따른 안도감에서 시작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전력공급 과잉전망은 2000년대 초중반 3·4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설계될 때와 비슷하다. 이 당시에도 충분한 전력상황을 이유로 환경단체가 발전소 건설 불필요를 주장했고, 국회에서는 전원설비감축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3·4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초안보다 전원설비가 축소된 채 확정된다. 당시 여유로운 전력상황 하에서는 5년 뒤 순환정전 사태를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최근 정부는 국가 에너지정책을 공급 확대에서 수요 관리로 방향을 선회했다. 전력을 더 만들기 보다는 현명하게 쓰도록 한다는 게 취지다. 분명 전원설비 확대를 줄인다는 계획은 있지만, 이는 발전소와 송전탑 건설의 어려움 때문이지 결코 전력이 남기 때문은 아니다.

전력이 충분하다는 안도감만으로는 전력산업이 언제까지 안녕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누군가 우리나라 에너지 수급상황에 대해 녹색성장은 물론, 갈색성장도 어렵다고 했다. 에너지 수급의 어려움과 리스크를 언급한 말이다.

더 이상 전원설비를 늘릴 수 있는 부지는 없다. 그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국가 전력사용량은 매년 6% 이상씩 오르고 있다.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전력IT, ESS 등 에너지 관련 산업에 대한 투자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남으면 여유를 부리고 모자라면 조급증에 빠져드는 우를 더 이상 범하지 말아야 한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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