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팹리스 업체 A사는 시스템반도체(SoC) 사업 매출 비중이 전체의 절반을 밑돈다. 정보기술(IT) 유통·단말기·서비스 사업 비중이 더 높다. 회사 외형을 유지하기 위해 본업보다는 부업에 더 힘을 실은 탓이다.
반도체 시장에서 국내 팹리스 업체가 설 자리를 잃어가면서 SoC 전문 업체의 의미도 퇴색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한축인 팹리스 업계 재도약을 위해 체력을 안배하는 측면도 있지만 자칫 본연의 기술 개발 역량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SoC사업체로 등록된 기업은 지난 2011년 333개사로 정점을 찍었다가 2012년 314개사로 하락 반전했다.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지난해에도 SoC 기업 수는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더 큰 문제는 팹리스 형태로 SoC 사업을 영위하는 곳 중 상당수가 SoC 전문업체로서 위상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많은 업체가 시장 불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업 다각화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 연구개발(R&D) 인력을 갖추지 못해 독자 기술 개발이 어려운 곳도 다수다. 2012년 기준 SoC 사업체는 314개에 달하지만 종업원 수가 4인 미만인 곳이 133개사에 이른다. SoC 기업 10곳 중 4곳은 직원 두세 명으로 회사를 꾸려가는 실정이다. 대부분 글로벌 SoC 기업에 맞서기는커녕 차세대 SoC 기술 개발도 힘들 것으로 파악된다. 사실상 ‘무늬만 팹리스’인 셈이다.
반도체 연구기관 관계자는 “많은 SoC 기업이 시장 수요 감소로 매출이 줄자 위기 극복 차원에서 여러 분야로 사업을 넓히고 있다”며 “이로 인해 회사의 SoC R&D 경쟁력이 떨어지고, 우리나라 SoC 산업 역량이 약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팹리스 업체의 이 같은 행보를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팹리스업체 B사 사장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로 논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중요한 것은 사업 다각화를 궁극적으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그저 기업 생존을 유지하는 방책이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R&D 재투자를 늘리는 등 기존 SoC 사업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자료:통계청,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