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살리기 우호적 분위기 편승, 재계 공세적 ‘규제 완화`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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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가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등 범정부차원의 경제 활성화 움직임에 편승해 공세적 규제완화 요구에 나서고 있다. ‘경제민주화’ 이슈에 움츠렸던 재계가 글로벌 기준에 맞는 규제수준 요구, 규제총량제 도입, 정부 부처별 규제개혁 목표 할당제 등 전반적 기업규제 개혁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11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주요 경제단체는 경제활성화와 규제완화를 연계한 기업 애로사항을 정부에 적극 건의하고 나섰다. 업종 및 기업규모별 의견수렴과 전문가 자문 등으로 규제완화 요소 발굴에도 속도를 낸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잔뜩 움츠리며 정부 눈치를 보던 흐름과는 큰 차이가 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6일 열렸던 정책간담회에서 현오석 경제부총리에게 “정부가 규제를 개선하고 있지만 개선되는 것보다 더 많은 규제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우리 기업들만 받는 규제는 해소되야 한다”는 목소리를 공식화했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도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주 원인 가운데 하나가 규제”라며 “산업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으려면 정부 부처별로 규제개혁 목표를 할당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불필요한 규제를 줄여달라는 업계 요구가 빗발치고 있지만 규제총량은 지속적으로 늘어 왔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규제개혁위원회가 1998년부터 등록·관리해 온 등록규제 수는 지난 2009년 1만2905건에서 지난해말 1만5269건으로 4년 동안 2364건(18.3%) 증가했다. 이 기간에 하루 1.6건 꼴로 규제가 늘어난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새로운 규제를 도입할 경우 다른 규제 하나를 없애는 규제총량제 논의도 있었지만 이 역시 실효성은 낮다”며 “단순 규제가 없어지고 강력한 제한사항이 추가되면서 기업들이 느끼는 규제 체감도는 계속 높아져 왔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기업에만 적용되는 규제는 더 큰 문제다. 이달부터 시행된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다른 나라에는 찾아볼 수 없는 제도다. 감사 선임시 대주주 의결권 제한, 신규순환출자 금지, 대기업의 공공기관 IT부문 입찰 제한 등도 글로벌 대기업들은 적용받지 않는 우리나라만의 규제라는 게 경제단체들의 지적이다.

지주회사와 자회사간 공동투자를 불허하는 지주회사 규제가 그룹 차원의 대규모 투자나 큰 인수합병(M&A)을 막는다는 지적도 있다. 법적 규제가 아닌 권고사항이지만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역시 해외에는 없는 우리나라 대기업에 특화된 제도로 꼽힌다.

전경련 관계자는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건 정부가 오히려 창조적으로 규제를 늘린 측면이 있다”며 “정부의 투자와 고용확대 정책에 기업의 적극적 호응을 유도하려면 규제완화라는 당근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대기업이 뚜렷한 성장엔진과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과도하게 규제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금을 쌓아둔 대기업들이 투자·고용을 늘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규제보다는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 탓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6월말 기준 국내 10대그룹(금융사 제외) 상장 계열사의 사내 유보금은 477조원으로 3년 전인 2010년 말 331조원에 비해 43.9%나 늘었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규제완화가 투자확대로 즉각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주요 기업의 구체적 요구에 맞는 맞춤형 규제완화가 필요하지만 이는 특혜 시비를 불러올 수 있다”며 “정부와 기업이 우호적 협력 채널을 가동하면서 정책 방향의 교감을 넓혀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10대 그룹 주요 규제 / 자료: 전국경제인연합회>

10대 그룹 주요 규제 / 자료: 전국경제인연합회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