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 미래모임]금융IT 선진화의 과제, 계약관행 개선이 시급

국내 금융IT는 지난 1970년 이후 두 번에 걸친 은행권 차세대시스템 구축 등으로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전국적으로 은행 간 자동이체와 결제 서비스가 24시간 365일 이뤄지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첨단 정보시스템을 개발한 우리나라 금융IT 이지만 여전히 후진적인 정보시스템 개발환경을 갖고 있다.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코어뱅킹 소프트웨어(SW)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역삼동 삼정호텔에서 열린 ‘정보통신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 2월 정례 토론회에서는 이경조 뱅크웨어글로벌 대표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국내 금융IT 선진화를 위한 열띤 토론을 펼쳤다.

참석자

이경조 뱅크웨어글로벌 대표

김성근 중앙대 교수

김진희 솔루션&서비스 상무

임진환 한화S&C 금융사업부 전무

사회=임춘성 연세대 교수

금융IT 선진화를 위해 IT서비스 시장의 선진화, 소프트웨어(SW) 산업화, 유지보수 선진화, 금융IT 역량확보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제시됐다. 이경조 뱅크웨어글로벌 대표는 ‘금융IT 선진화의 과제’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네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금융IT 생태계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IT서비스 시장의 선진화를 역설했다. 무엇보다 서비스 계약 관행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현재 국내 IT서비스 계약관행은 과업변경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IT기업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품질은 떨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과업변경에 따른 대가를 지급한 대표적 사례로 미국 오바마케어등록시스템 구축 사례를 소개했다. 미국 정부는 2011년 오바마케어등록시스템 구축 사업 금액으로 5500만달러를 지급하고 과업변경에 따라 최대 9300만달러까지 늘릴 수 있다는 내용으로 계약했다. 이후 가동 시점인 2013년 말 과업변경 확대로 사업 금액은 1조9600만달러가 늘어났고 최대 2조9200만달러까지 지급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변경됐다. 사업자는 추가 투입된 공수만큼 비용을 더 받은 것이다.

SW산업화는 핵심 금융시스템에 적용하는 애플리케이션 SW 개발을 의미한다. 이 대표는 “현재 우리나라 SW는 대부분 툴을 만드는 수준에 불과하다”며 “애플리케이션 SW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툴은 비교적 단가가 낮아 부가가치가 적지만 핵심 애플리케이션은 SW에 서비스를 포함해 판매하기 때문에 단가도 높고 그만큼 부가가치도 크다는 설명이다. 애플리케이션 SW 개발을 위해 역량 있는 전문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투자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유지보수 선진화로 10년마다 빅뱅 방식으로 기간계시스템을 재구축하는 관례도 깨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대표는 “유지보수를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면 정보시스템을 10년이 아닌 보다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IT 역량 확보도 시급하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벤치마킹할 대상이 없을 정도로 첨단 금융IT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지만 세계적인 금융SW가 없다. 이 대표는 “국내 SW업체는 솔루션보다 SI에 치중하기 때문”이라며 “업계와 학계의 공동 노력으로 솔루션 개발을 추진하고 프로젝트를 통해 산출된 결과물을 수행한 기업이 활용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제시했다.

금융보안 강화를 위한 해법도 제시했다. 이 대표는 “외주용역에 의한 개발이 늘어나면서 보안사고가 빈번해지고 있다”며 “거버넌스 체계를 강화, 보안사고를 예방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향후 금융기관의 보안 대응 정도에 따라 금융기관의 차별화가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 대표의 강연에 대해 정례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무엇보다 열악한 국내 개발환경에 대한 질문과 해법이 제시됐다. 오재인 단국대 교수는 “열악한 개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설계변경에 따른 대가를 보상해야 한다”며 “외주 인력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외주 인력에 대한 처우가 나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금융사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김진형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은 “국내 금융사 최고정보책임자(CIO)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며 “임원을 달면서 그냥 CIO가 됐다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김성근 중앙대 교수는 “최근 금융보안 사고가 발생하면서 사람을 교체하는 데만 집중하다보니 적절한 인물을 CIO로 선임하지 못하고 있다”며 CIO 역량 부족을 꼬집었다.

IT업체들의 결속력과 커뮤니케이션 부족도 문제로 제기했다. 김병배 김앤장 미국변호사는 “은행 입장에서 보면 저렴한 가격에 좋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어 오히려 좋은 것”이라며 “IT업체가 은행들에 사업대금을 높이는 것에 대해 설득하지 못하면 개발환경이 좋아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임주환 고려대 교수는 “무엇보다 고객정보보호 체계를 강화해야 금융IT 선진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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