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게임 룰을 바꿨다]<8> ‘월드와이드웹’ 창시자 팀 버너스 리

15세기 중반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근대식 인쇄술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 중 하나로 꼽힌다. 지식·정보의 대량생산과 확산으로 르네상스를 폭넓게 확대하고 종교개혁과 산업혁명, 시민혁명을 불러왔다. 일부 역사가는 구텐베르크 이후를 ‘지식의 시대’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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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다보스포럼에서 연설하는 팀 버너스 리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비견되는 발명품이 우리 삶을 180도 변화시킨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세계를 하나로 묶었다.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기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면서 산업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컴퓨터와 함께 20세기 최고 발명품으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다.

인터넷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월드와이드웹(WWW)이다. 월드와이드 웹이 없었다면 인터넷은 일부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 내에서 이메일과 파일을 전송하는 용도로만 쓰였을지도 모른다. 세계적인 정보 공유 공간을 열어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 개막을 알린 사람이 바로 월드와이드웹 창시자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다.

◇하이퍼텍스트로 세계를 묶다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팀 버너스 리가 ‘메시(Mesh)’라는 글로벌 하이퍼텍스트 프로젝트를 제안한 시기는 1989년이다. 그가 만들어 쓰던 정보 처리 프로그램 ‘인콰이어’가 기반으로 훗날 월드와이드웹으로 불리게 된 프로젝트다.

인터넷 개발 목적이 연구소 간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것이라면 월드와이드웹 프로젝트는 CERN 연구원 사이에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시작됐다. CERN은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에 많은 회원이 있었다. 버너스 리는 효과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활용하기 위해 하이퍼텍스트를 이용한 정보 전달 방법을 구상했다.

1960년대 테오도르 넬슨이 고안한 하이퍼텍스트는 ‘비순차적 텍스트 전개원리’에 따라 만든 정보조직 구조다. 문서의 특정 자료가 다른 자료와 링크로 연결돼 순서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넘나들며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버너스 리는 하이퍼텍스트를 인터넷에 접목하면 정보 검색과 공유가 더욱 손쉬워질 것으로 판단했다.

버너스 리는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W3C) 홈페이지에 당시를 회상한 글에서 “CERN은 훌륭한 조직이지만 연구원이 자주 바뀌면서 기존 정보가 활용되지 않고 사장됐다”며 “글로벌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이 CERN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경영진을 설득했다”고 전했다.

◇인터넷은 협력의 공간

초기 주변 반응은 시큰둥했지만 버너스 리는 시스템 개발 작업을 계속 이어갔다. 이듬해 10월 ‘httpd’로 이름붙인 최초의 웹 서버용 코드를 작성한 데 이어 HTML 문서와 넥스트스텝 운용체계(OS)에서 작동하는 브라우저 월드와이드웹을 개발했다. 월드와이드웹은 단순한 메뉴 중심이던 기존 인터넷과 달랐다. URL과 HTML, HTTP 등의 요소를 담아 각 컴퓨터에 담긴 정보를 쉽게 검색하고 게시할 수 있게 했다.

그해 12월 CERN 내부에 이어 1991년 여름엔 인터넷에 월드와이드웹과 기본 소프트웨어를 공개했다. 소문이 퍼지면서 웹서버를 내려받아 정보를 올리고 링크를 추가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1993년 4월 CERN은 월드와이드웹을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문서로 공표했다. 같은 해 일리노이 대학에서 개발한 웹브라우저 모자이크는 당시로선 우수한 그래픽으로 월드와이드웹의 확산을 부채질했다.

버너스 리는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인터넷에서 사용자 피드백을 받아 웹 디자인을 수정하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그와 인터넷 사용자의 노력으로 월드와이드웹은 세계로 퍼져나갔고 결국 인터넷과 동의어가 됐다. 국제통신연맹(ITU)에 따르면 세계 인구 셋에 하나가 웹을 쓴다.

버너스 리는 월드와이드웹의 특허를 주장하지 않았다. 인터넷은 협력의 공간이며 힘을 합해 세계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단편적 해결책이 모여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얘기다.

포브스는 “인터넷 초기 시절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시스템은 대다수 발명가와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었다”며 “버너스 리와 CERN의 결정은 이런 문화를 바꾸고 인터넷에 무한한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를 위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했다.

◇웹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1955년 런던에서 태어난 버너스 리는 1976년 옥스퍼드대 퀸스칼리지에서 물리학 학위를 받았다. 맨체스터대학 컴퓨터 개발팀에 근무하던 아버지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종이상자로 컴퓨터 모형을 만들고 놀았다. 대학에서는 납과 인두, TV, M6800 칩으로 컴퓨터를 만들기도 했다.

졸업 후 통신 장비 제조사와 소프트웨어 회사를 거친 그는 1984년부터 CERN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머릿속으로만 구성하던 월드와이드웹을 현실로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1994년 CERN에서 나와 MIT대학에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W3C)을 창립하고 소장을 맡아 웹 표준 제정과 발전에 힘쓰고 있다.

웹은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기 때문에 항상 자유롭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버너스 리의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다. 그는 와이어드와 인터뷰에서 “가장 큰 웹 발전 저해 요소는 특정 거대 조직이 인터넷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접근을 통제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지난 몇 년에 걸쳐 세계는 웹 접근의 자유를 보장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인터넷 단속에 맞선 저항이 세계로 퍼져나간다고 그는 덧붙였다.

버너스 리는 월드와이드웹 개발의 공을 인정받아 2004년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같은 해 핀란드 정부는 그에게 제1회 밀레니엄 기술상을 수여했다.

-1955년 런던 출생

-1976년 옥스퍼드대 퀸스칼리지 물리학과 졸업

-1976년 플렛세이 텔레커뮤니케이션스 입사

-1978년 소프트웨어 기업 D.G Nash 입사

-1981년 이미지컴퓨터시스템 입사

-1984년 CERN 입사

-1989년 월드와이드웹 프로젝트 제안

-1990년 월드와이드웹 개발

-1994년~현재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W3C) 설립, 소장

-2004년 사우스햄턴대학 컴퓨터과학 교수

-2004년 영국 왕실 기사작위 수여, 핀란드 밀레니엄 기술상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