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공간을 물리적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욕망…듀얼 모니터를 넘어 N-스크린으로`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천재 발명가이자 기술자인 아고스티노 라멜리. 그가 1588년 구상한 서안바퀴, 즉 북휠은 여러 권의 책을 펼쳐 놓고 동시에 볼 수 있게 해주는 기계 장치다.
북휠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유성 기어를 활용해 북휠이 회전을 해도 책이 일정한 각도를 유지한다. 유성 기어는 항성을 도는 행성처럼 중심축을 도는 큰 기어 주위에 작은 기어를 여러 개 돌게 하는 장치다. 작은 기어마다 책을 놓을 수 있는 작은 선반이 달린다. 가운데 큰 기어에 맞춰 작은 기어도 돌기 때문에 선반은 책을 떨어뜨리지 않고 일정한 각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라멜리 자신은 이 기기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기기를 활용하면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고서도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볼 수 있고, 나아가 어디에 놓든 큰 공간을 차지하지 않아 매우 편리하다고 말했다.
라멜리는 여러 정보를 동시에 보여주는 이른바 `다중 스크린`을 구상했던 것이다. 다중 스크린은 정보 공간을 물리적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욕망을 구현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듀얼 모니터는 이런 욕망을 보여주는 일상적 사례다.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은 극단적으로 수백 개의 모니터로 자신의 정보 공간을 구현한다.
1970년대 컴퓨터 기술자들은 하나의 모니터에 여러 개 정보를 동시에 보여주는 인터페이스를 개발했다. 제록스 팔로알토연구소는 물리적인 모니터 공간을 여러 개의 창, 즉 윈도로 분할해 각각의 창에 각기 다른 정보를 보여주었다. 이것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다중 윈도다.
그러나 여러 개로 쪼갠다 해도 모니터는 공간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팔로알토연구소팀은 이를 윈도 중첩, 수평-수직 스크롤바 인터페이스를 통해 `가상적으로` 극복했다. 윈도 중첩은 제한된 크기의 책상 위에 서류나 책을 여러 개 겹쳐놓고 있다가 보고자 하는 책이나 문서를 맨 위에 올려놓고 보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런 가상적인 공간 확장은 책상과 마찬가지로 여러 개를 동시에 보는 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결국 물리적인 모니터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라멜리는 책이라는 당시 지배적인 정보 매체에 걸 맞는 다중 모니터를 북휠로 구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라멜리 북휠은 정보 공간의 물리적 확장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여러 정보를 보게 되면 정보들 사이의 연계를 통해 새로운 무엇이 떠오른다. 현대 컴퓨터 기술의 아버지인 바네바 부시가 1945년 구상한 `메멕스(Memex)`라는 장치는 두 개 모니터를 통해 키워드로 검색한 정보를 동시에 보여준다. 부시는 이 장치를 통해 인간 정신의 고유한 과정인 연상 작용을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것이 지금은 정보 조직화의 보편적인 원리가 된 하이퍼텍스트의 기원이다.
우리는 이제 단순히 스크린 사이의 `정보 연계`를 넘어 매끄러운 `정보 흐름`을 가능케 해주는 N-스크린을 경험하고 있다. PC에서 보던 책이나 영화를 스마트폰으로 이어서 볼 수 있다. 다중 정보 공간에 대한 욕망이 라멜리의 북휠, 다중 윈도, 다중 스크린 사이에서 공명하고 있다.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leej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