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태양광 시장, 중국에 안방 내주나
국내 태양광기업이 중국기업에 안방을 내주고 있다. 신재생의무할당제(RPS)로 태양광 시장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지만 수입이 늘면서 중국 제품도 빠르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오로지 가격으로만 제품을 선택하는 현재 분위기에서는 중국 제품의 득세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당초 계획과 달리 RPS가 국내 신재생산업 육성에 기여하는 바가 적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 각국이 자국 시장 보호에 나서는 지금, 국내 시장의 진입장벽은 되레 낮아지고 있다.
◇불안한 태양광 안방 시장
지난해 국내 태양광 설치량은 300㎿ 내외다. GW단위 설치량을 기록한 해외시장과 비교하기 힘들지만 국내 제조업계가 기댈 수 있는 규모는 점차 형성해 나가고 있다. 2012년 시행한 신재생의무할당제도(RPS)로 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보급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정작 재미를 보고 있는 것은 중국기업이다. 제품 가격 경쟁력이 우수하다보니 국내 시장에서 점유율은 점차 커지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추진한 대규모 태양광발전사업에는 여지없이 중국 제품이 들어갔다. 40㎿규모 영월프로젝트에는 중국 S사 제품이, 24㎿ 거금도 사업에도 중국 C사 제품이 사용됐다. 두 사업은 국내에서 추진한 역대 최대 규모 태양광 프로젝트다.
사업 입찰에 참여한 한 기업관계자는 “국내 기업 모듈로는 도저히 가격을 맞출 수 없었다”며 “대형 사업은 오로지 경제성만 보고 사업을 추진하기 때문에 국산 모듈을 사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업계는 RPS가 본격 시행된 지난 2012년 이후 국내에 설치한 태양광발전 설비의 절반가량이 중국 제품일 것으로 추산한다. 소규모 가정용 보급사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태양광 발전 시공 업체 관계자는 “정부·지자체 지원을 받는 가정용 보급사업이나 자가 설치사업을 추진할 때 소비자는 가격만 보고 모듈을 선택하게 된다”며 “사실상 대다수 사업에 중국 제품이 쓰이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태양광 업계에서는 RPS나 정부, 지자체가 지원하는 태양광 보급사업이 활발해도 그 효과가 태양광 제조기업에까지 미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안방 내주면 산업 기반 흔들린다
자유로운 경쟁을 펼쳐야 하는 태양광 시장이지만 자국 기업에 안정적인 사업 기반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논리는 유럽의 상황을 보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유럽은 자국 시장 보호에 실패해 태양광 산업 기반을 잃었다.
독일을 중심으로 태양광 보급에 열을 올린 유럽에서 재미를 본 건 중국기업이다. 연간 수GW를 설치했지만 중국기업의 공세에 유럽기업은 안방을 내줬다. 세계 1위 태양전지·모듈 기업이었던 큐셀이 시장에 매물로 나온 것도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2012년 유럽의 태양광 설치량은 17.2GW에 이르지만 유럽에서 공급한 모듈물량은 4.5GW에 불과하다.
미국도 시장을 중국기업에 내주면서 솔린드라, 에버그린솔라, 스펙트라와트 등 다수 태양광기업을 잃었다. 국내 시장도 현 상황이 지속되면 점차 국내 기업의 설자리가 점차 줄어들 것이 자명하다. 국내 시장 수요 창출로 태양광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부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된다.
안형근 건국대학교 교수는 “내수 시장은 업계가 안정적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이라며 “해외 시장에서 경쟁이 강화되기 때문에 내수에서 안정적 수요를 창출할 때 국내 산업이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초기 투자비만 따지는 시선 바꿔야
태양광발전 사업자가 중국 제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발전공기업 RPS사업 관계자는 “현대중공업, LG전자 등 사후관리가 쉬운 국산제품을 사용하고 싶지만 중국 제품과 가격 차이를 극복하기 힘들다”며 “사업이 커질수록 제품을 선택할 때 가격을 고려하는 비중은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업계는 중국 제품과 국내 제품의 가격 차이를 W당 100원~200원 정도로 본다. ㎿급 대형 사업으로 넘어가면 수십억원의 차이가 발생한다. 20년 이상 운영하는 태양광발전소 특성상, 초기 투자비는 전체 발전수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싼 제품을 사용해 경제성을 높이려고 한다. 하지만 발전수익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발전량을 놓고 보면 반드시 중국 제품이 유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태양광 모듈은 연간 1% 내외의 효율감소가 발생한다. 운영기간이 길어 유지보수 비용이 크고 사후관리에 따라 발전량 차이가 크다. 예를 들어 같은 250W 모듈로 같은 시간을 가동해도 발전량과 효율감소 정도가 다르다. 제품 품질과 유지·관리 빈도에 따라 발전량은 크게 차이날 수 있다. 사후관리측면에서 장점을 보유한 국내 제품을 사용하면 초기 투자비용 차이는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다.
안형근 교수는 “발전차액지원제도로 국내에 태양광이 본격 보급된 지 5년을 넘어서면서 현재 발전소 모듈간 발전수익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사례가 많다”며 “모듈을 선택할 때 가격, 효율만 따질 것이 아니라 가격 대비 발전량을 따지는 프레임변화가 분명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