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美법원 망중립성 판결 파문, 향후 정책 방향은?

미 망중립성 판결, 한국 여파는

한동안 잠잠하던 망중립성 이슈가 다시 들끓고 있다.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지난주 망중립성을 둘러싼 연방통신위원회(FCC)와 통신사 버라이즌 간 소송에서 망중립성에 반발한 통신사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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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인터넷전화 `보이스톡` 논란으로 통신업계가 요금제 개편 딜레마에 빠졌다. 지난 주말 서울 역삼동 카카오에서 직원들이 아이폰과 안드로이드용 `보이스톡`을 시연하고 있다.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미 법원은 FCC가 망중립성 고수를 위해 제시한 `열린 인터넷 정책`(Open Internet Order) 3원칙 중 `투명성` 원칙을 제외한 `차별 금지`와 `차단 금지`는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FCC가 법에 정해진 한계를 넘어 규제를 시행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에서 망중립성 원칙이 부정당했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과부하를 일으키는 인터넷 사업자의 속도를 늦추거나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기업에 추가 과금이 가능해지리란 예측이 덧붙여졌다.

반면 이번 판결은 망중립성 규제의 관할 범위를 정한 것일 뿐, 망중립성 원칙 자체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는 반론도 거세다. 망중립성 이슈를 선도하는 미국에서 내려진 판결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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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C 권한 어디까진가가 핵심 쟁점

이번 소송의 핵심은 FCC가 인터넷 접속사업자(ISP)를 규제할 권한을 가졌느냐는 점이다. FCC는 지난 2010년 망에서 특정 콘텐츠나 사업자를 차단하거나 차별해선 안되며 네트워크 관리가 필요할 때엔 그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열린 인터넷 정책`을 내놓았다.

버라이즌은 FCC가 일반적 전화통신 역무를 제공하는 기간통신사업자(common carrier)가 아닌 ISP에 차별 및 차단 금지 등 기간통신사업자에 부과하는 규제를 적용한 건 월권이라고 주장했다. 미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FCC는 과거 인터넷 접속사업자를 스스로 ISP로 분류, 제 발등을 찍은 셈이다.

미국은 1934년 FCC 탄생 이후 전화망의 중립성을 강조하는 정책을 폈다. 국영 통신사가 있는 다른 나라와 달리 미국은 민간기업 벨이 시장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이후 전화망으로 데이터 통신이 가능해지면서 미국은 규제가 엄격한 전화 역무와 느슨한 첨단 통신을 구분했다. 혁신과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이는 기간사업자와 ISP를 구분해 규제하는 현재 정책으로 이어졌다.

◇美, ISP 지위 재설정 논란 가능성도

이번 판결은 인터넷 혁신 촉진의 필요성과 현행 법에 명시된 규제 관할은 지켜야한다는 현실론 사이에서 고민한 흔적이 묻어난다. FCC는 미국 통신법에 명기된 기관의 역할, 즉 `모든 국민이 적절한 첨단 통신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도록 장려한다`는 규정에 따라 인터넷 망중립성 정책을 펼칠 법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연방항소법원은 FCC의 이런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였고, 이런 정책이 없다면 소비자 피해가 있으리란 주장도 인정했다. 국내외 인터넷 기업 모임인 오픈인터넷협의회(OIA)가 “이번 판결이 망중립성 원칙의 폐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이번 판결을 근거로 망중립성 원칙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판결 취지를 곡해한 것”이라 주장하는 이유다.

FCC로서는 통신 소비자 후생을 위해 망중립성 정책이 필요하며 이를 수행해야 할 역할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완전한 패배는 아니라는 해석이다. 톰 휠러 FCC 위원장은 판결 이후 “열린 인터넷 정책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예 ISP의 지위를 변경하려는 시도를 할 것이란 예상까지 나온다.

◇당장 큰 파급은 없겠지만…

이번 판결이 우리나라 망중립성 논의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당장 큰 파급은 없더라도 한단계 나아간 공론화 과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기간사업자와 ISP가 분리된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통신사업자와 인터넷 접속 사업자의 구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04년부터 인터넷 서비스가 기간통신역무에 포함됐다. 전기통신사업법에도 이용자 이익을 저해하는 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망중립성 원칙을 담은 `통신망의 합리적 트래픽 관리·이용과 트래픽 관리의 투명성에 관한 가이드라인`도 지난해 말 마련됐다. 인터넷업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미국 통신 규제 역사의 특수성이 반영된 문제라 똑같은 잣대로 한국 상황에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망중립성이 소비자 후생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뒤집긴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버라이즌부터 판결 이후 “망중립성을 흔드는 행동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FCC가 ISP를 관할할 권한이 없다면 실질적으로 ISP에 망중립성을 강제할 방법도 없지 않느냐는 문제는 남는다. 미국에서 경쟁 촉진을 위해 ISP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면, 우리나라에서도 통신사들이 망중립성 원칙의 영향을 덜 받은 채 소비자 후생을 위한 혁신적 통신 상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일 수 있다.

아직 망중립성에 대한 보편적 합의가 없는 상황이라 주요 국가의 행보가 다른 나라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여지가 크다.

사업자 간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 후생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지속적 정책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동희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는 “미국은 유효 경쟁을 이끌어내고 다양한 사업자가 참여하는 역동적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일관된 정책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계속 일어날테니, 뚜렷한 목표 없이 문제가 생길 때만 땜질 처방을 내놓는 방식을 지양하고 선제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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