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스마트그리드가 도입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관련 산업계는 정부의 그늘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그리드는 ICT와 기존 전력망이 만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사용할 수 있는 차세대 전력 인프라다. 이 때문에 선진국과 후진국 구분 없이 세계가 스마트그리드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국내 중소·대기업 할 것 없이 대다수의 기업들은 정부 과제나 보급 사업만 쳐다볼 뿐 시장 창출을 위한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접근이 유리한 KT와 SK텔레콤은 해당 사업조직을 `줄였다, 늘렸다`를 반복한다. 중소업체는 이들 뒤에 서서 정부 사업만 기다리고 있다. 국내 비즈니스 모델을 표준으로 삼아 해외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은 매년 반복되는 헛구호가 됐다.
전문가들은 스마트그리드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전기요금 현실화와 전력재판매 허용 등을 꼽는다. 비현실적인 요금체계에서는 전기를 절감할 수 있는 각종 솔루션을 제시해도 이윤이 남지 않는데다 한국전력의 전력독점판매 체계에서는 사업 확대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판매시장 개방이나 재판매 등의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정치적 이해관계 탓에 민간 기업이 원하는 수준의 변화는 단기간 내 기대하기 어렵다.
일본은 2016년부터 전력판매시장이 전면 개방된다. 대기업을 포함해 군소 규모의 스마트그리드 사업자가 전력을 판매하고 관리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 시장이 열릴 전망이다. 벌써부터 에너지저장장치(ESS) 기반의 다양한 시장이 열리고 있다. 도매로 받아온 전력을 대규모로 저장해 분산형 전원으로 활용한다. 가정·사업장도 전기를 스스로 관리하면서 에너지 요금을 줄일 수 있다. 오릭스 등 거대 금융사가 리스·렌털 사업을 서둘러 준비하는 이유다.
전기요금 현실화나 전력판매시장을 개방할 수 없다면 심야 전기요금을 내리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전기는 특성상 바로 사용하지 않으면 즉시 소멸되는 에너지다. 심야 전기요금을 내린다면 ESS를 활용해 버려지는 심야의 전기를 저장했다가 요금이 비싼 주간 시간대 활용하는 요구가 생겨나면서 새로운 수요관리 시장을 기대할 수 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