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 역사는 소재의 변천사로 구분하면 석기·청동기·철기시대로 진화해 왔다. 철기시대 시작은 기원전 1500~3000년경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후 지금까지 소재에 의한 역사구분은 정의되지 않고 있다. 아직도 철기시대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인가. 혹자는 현대를 반도체 시대라고 주장한다. 반도체에 의한 각종 전자정보장치가 편의성과 효율성에서 우리사회에 큰 변혁을 가져 왔지만 이것이 없다 한들 다소 불편은 있을지언정 20세기 수준의 문명생활을 누리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그러나 철강이 없다면 자동차, 철도, 대형선박, 고층빌딩 등은 생각할 수도 없고 냉장고나 주방기기조차 신통치 않을 테니 현대의 문명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아마도 영국의 베세머가 양산제강법을 개발한 1856년 이전의 문명 수준으로 회귀될 것이 틀림없다.
석유파동 여파로 세계 철강경기가 불황을 맞던 1977년 당시에 국제철강협회(IISI) 회장이었던 사이토 신일본제철 사장은 총회연설에서“타임캡슐을 타고 21세기로 가보아도 그곳은 철의 시대일 것이다”라는 말을 남겨 참가자의 큰 공감을 받았다. 불황의 늪에서 자조적으로 나온 말이겠지만 36년이 지난 오늘 날의 21세기에도 우리는 분명 그의 예견대로 철의 시대에 살고 있다. 다만 지금의 철은 `Fe`를 주성분으로 하고 있는 점은 동일하지만 불순물이 많은 옛날의 철과는 달리 순도를 높이고 합금을 첨가해 특성을 제어한 강재의 상태로 사용되므로 정확히는 강의 시대라 해야 옳을 것이다.
철(鐵)자는 `金` `王` `哉`의 합성이므로 `철은 부를 성취하는 왕도`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철강은 국력`이라는 슬로건이 통한다. 그렇다. 역사적으로 영국, 독일, 미국, 일본 등 철강강국은 일찍이 부강했고 우리나라도 철강업에 기초해 중화학공업시대를 열어 경제성장을 이뤘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제철소 건설에 대한 열망은 제1기 100만톤 규모의 종합제철소(POSCO) 건설을 실현시켜 오늘날 조강생산 6900만톤(2012년 실적)에 달하는 세계 제6위의 철강강국으로 부상하는 기틀이 됐다. 보릿고개 넘기가 힘겹던 1960년대의 배고픈 농경국가에서 막대한 투자를 요하는 제철소 건설을 과감하게 추진한 예지와 통찰력이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철강은 외견상 강(strong)하고, 경(hard)하고, 냉(cool)한 융통성 없는 남성적 이미지를 풍기지만 내면적 본질은 다양성(variety)과 친근성(affinity)과 유연성(flexibility)을 갖는 부드러운 여성적 이미지로 넘쳐난다. 열처리나 가공방법에 따라 성질이 변화무쌍하고, 다른 원소와의 친화력이 좋아 합금화가 용이하여 용도에 맞춰 특성을 임의로 제어할 수 있다.
그래서 성분과 특성으로 분류하면 철강은 수천 종류에 달한다. 철은 지구상에 자원이 풍부한데다 환원 제련이 용이해 경합재료인 알루미늄 보다 20~25% 저비용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수명이 다해 폐기되는 고철은 90% 이상이 재생되므로 지속가능한 자원 순환형 소재이다. 철강의 장점과 경제성은 다른 소재의 추종을 불허하며 철기시대가 고대에서 현대까지 지속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철강 산업은 사양길에 있다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세계의 조강 생산은 2002년 약 9억톤에서 연평균 7%씩 성장해 2012년에는 15억5000만톤에 달하였다.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종래의 장치 의존형에서 지식집약형으로 변모해 소프트기술 활용에 의한 제품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의 강은 10년 전의 강에 비하면 강도, 성형성, 내식성 특성이 마치 다른 재료처럼 진화돼 있다. 철강은 재능 있는 사람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간직해 탐구할수록 새로운 소질이 개화한다. 우리는 철강에 내재된 소질의 일부만을 활용하고 있을 뿐이므로 연구개발에 따라 새로운 강재는 계속 출현할 것이다. 그래서 대학이나 연구소의 재료분야 연구에서 철강연구가 등한시 되고 있는 현실은 실로 유감스럽다. 중국, 인도 등 신흥 철강국이 추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국내와 국제정치에서 대립과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국내정치에서는 소통과 타협이 실종되고 한일관계는 과거사와 독도 문제로 꼬여 있다. 모두 자기주장만 관철시키려는 정치인들의 꽉 막힌 철통같은 경직성 때문이다. 강경한 철의 이미지만 발산하는 고집스런 정치가 아니라 철이 갖는 다양성과 친화력과 유연성을 발휘하는 세련된 정치기술이 아쉽다. 무한한 가능성을 갖는 점은 정치나 철강이나 동일하므로 정치가도 연구자처럼 내재된 가능성에서 유용한 소질을 발굴하는데 진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철기시대를 살고 있는 만큼 정치하는 사람들이 철의 본질에서 정치하는 방법을 배운다면 좋은 세상이 올 것으로 믿어 마지않는다.
심재동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ReSEAT 프로그램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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