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의 미디어 공명 읽기]<2>태블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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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초 셰익스피어 시절의 태블릿

`셰익스피어의 태블릿을 가지고 싶다!` 태블릿은 애플의 아이패드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니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가 만든 후 역사를 거슬러 고대 수메르인에게 전해준 것이 아니다! 이는 폴더나 파일이 컴퓨터 등장 이전의 문서관리 시스템인 것과 마찬가지다. 태블릿 역사는 기원전 4000년 전 점토판, 즉 클레이 태블릿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메르인은 점토를 손바닥 크기로 만들어 위에 갈대 줄기로 만든 스타일러스 펜으로 쐐기 모양의 글자, 즉 설형문자를 기록했다. 점토판은 처음에는 영수증과 같은 상업적 거래의 문서로 활용되다가 나중에는 지금의 태블릿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정보와 지식을 기록하고 읽는 저장 매체가 되었다.

정보를 기록하는 태블릿 표면은 점토에서 밀랍으로 발전해 고대 그리스인은 나일강 지역에서 발명된 파피루스와 더불어 밀랍판을 보편적인 기록 매체로 사용했다. 밀랍판에 쇠로 된 스타일러스 펜으로 기록하는 그리스인의 모습은 마치 우리가 스타일러스 펜을 사용해 태블릿 PC와 상호작용하는 것과 아주 흡사하다.

서구에서 밀랍판으로 대표되는 태블릿 사용은 중세를 거쳐 19세기까지 이어졌을 정도였다. 1601년 써진 것으로 추정되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에는 또 다른 형태의 태블릿이 등장한다. `글쓰기 테이블` 또는 `테이블 책`이라고도 불린 이른바 `글쓰기 태블릿`은 요즘의 다이어리 모습이었는데, 주인공 햄릿은 태블릿이라는 기록 매체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독백을 한다.

“아, 내 기억의 테이블에서 모든 사랑의 기록을 내가 다 지워버릴 수만 있다면…” 셰익스피어 시절의 태블릿은 밀랍 대신 내구성이 개선된 종이나 가죽으로 특수 코팅된 여러 장을 엮어 가죽장정까지 입힌 멋진 모습이었고, 금속으로 된 스타일러스로 쓰고 스펀지로 지울 수 있어서 페이지의 재사용이 가능했다. 당시 비즈니스에 바쁜 런던이나 파리 사람들이 항상 휴대하며 중요한 정보나 생각을 기록하고 일정을 관리했다고 한다.

현대적인 태블릿은 인공위성으로도 유명한 아서 클락이 1968년 소설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뉴스패드`라는 이름의 기기를 구상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여기서 클락은 주인공이 `풀스캡 크기의 뉴스패드를 우주선의 정보 회로에 플러그인해 지구로부터 최신 보고서를 스캔해 온다`고 묘사하고 있다. 2010년 출시된 아이패드가 대중화되면서 클락의 뉴스패드를 알아채게 된 많은 사람은 뉴스패드가 아이패드를 예고한 것이라고 흥분해 마지않았다.

아이패드 대중화를 전후해 수많은 태블릿 PC가 출시되면서 현대인은 태블릿을 기록 매체를 넘어 컴퓨팅 매체이자 통신 매체, 읽기, 이야기, 오락 매체로 널리 사용하고 있다. 태블릿 PC는 이제 기존 모든 매체를 포괄한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 `재매개의 결정체`가 되었다.

그럼에도 수천 년에 걸쳐 지속되어온 태블릿은 현대적 태블릿 PC와 아날로그·디지털의 구분을 넘어서는 공명의 계기를 공유하고 있다. 현대식 개념으로 표현하면, 먼저 사용자 인터페이스(UI) 측면에서 두 가지 형태 모두 스크린에 스타일러스 펜을 통해 글을 쓰거나 조작하도록 되어 있다. 스타일러스 펜의 머리 부분에 지우개가 달린 형태는 수 천 년부터 계속되어 현대적인 스타일러스의 지우개 겸용 기능으로 이어지고 있다.

두 번째로 사용자 경험(UX) 측면에서 키보드를 사용해 입력을 하는 데스크톱 컴퓨터와 달리 태블릿은 직접 스크린 표면에 글을 쓴다는 점에서 이른바 `육화된 매핑`이라는 상호작용 양식을 제공한다. 세 번째로 미디어 양식 측면에서, 디지털 이전의 태블릿도 항상 휴대하며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미디어라는 점은 미디어의 역사가 흔히 생각하듯 고정형 미디어가 아닌 모바일 미디어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이패드와 같은 현대적 태블릿이 아닌 17세기 셰익스피어 시절의 태블릿을 가지고 싶다! 디지털은 낭만이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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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500년 태블릿을 사용하는 고대 그리스인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leejh@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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