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약 200억원대 정부 R&D예산을 투자해 구축한 산업용 전자빔 조사시설이 체계적인 관리 부족으로 작동이 중지된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의약품이나 식품 등의 멸균에 사용되는 이 시설은 주요 수요처가 기업체였지만, 시설의 이용료가 과도하게 높았던 탓에 최대 수요처였던 기업이 직접 대체시설을 구축함에 따라 수요 부족으로 인해 시설가동을 중단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정부가 대형 연구시설의 구축까지만 관리하고 실질적 운영은 해당 연구기관에 맡겨 자립화를 유도하는 체제였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막대한 운영비가 들어가는 연구시설의 특성상 해당연구기관이 스스로 자립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50억 원 이상의 투자가 이뤄지는 시설을 의미하는 대형연구시설은 선도적 R&D 수행과 과학기술분야 기초연구를 통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는 필수요소다. 동시에 우수 R&D 성과를 창출하는 과학적 부가가치뿐 아니라, 국내외 우수인재 유인수단, 스핀오프를 통한 기업 창업과 고용의 창출 등 다양한 경제적〃사회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과학기술 인프라로써 매우 중요하다.
현재 국내 대형연구시설은 98개다. 구축비는 5조9886억 원이 투입됐다. 국가 지원을 받는 84개 대형연구시설에 대한 시설 운영비는 구축비의 약 8.7%에 해당되는 2327억 원의 예산이 매년 소요된다.
정부 R&D 예산으로 구축 운영되는 대형연구시설에 대해서는 막대한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구축단계뿐 아니라, 실질적인 운영단계에서도 국가 차원의 관리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과학기술 선진국인 미국은 대형연구시설에 대한 관리가 매우 철저하다. 대형연구시설 구축을 지원하는 있는 미국에너지부(DOE)와 국가과학재단(NSF)은 모두 대형연구시설 구축로드맵을 수립하고, 대형연구시설 구축 계정(MREFC: Major Research Equipment and Facilities Construction Account Program)을 별도로 마련해 철저한 타당성 검증을 통해 반드시 필요한 대형연구시설부터 구축되도록 하고 있다.
DOE는 대형연구시설 구축로드맵에 따라 지난 2007년 28개 시설에 약 26조원, NSF는 `시설계획`에 맞춰 지난 2008년 19개 시설에 약 4450억 원을 계획, 투자하고 있다. NSF는 대형연구시설매뉴얼을 마련해, 구축에서 처분까지 각 관리단계에 대한 업무를 규정하고 있으며, DOE의 경우 각각의 대형연구시설 마다 공무원을 파견해 운영 현장에서 직접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국가에 보고하는 상시 관리, 감독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또 대형연구시설이 중요한 R&D 핵심 자원인 만큼 국가 소유로 규정하고, 연구기관을 대상으로 위탁경영을 실시하며, 운영비 대부분을 국가가 지원함으로써 안정적 운영을 유도하고 있는 것도 큰 특징이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대형연구시설에 대한 관리체계가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그나마 정부가 이러한 중요성을 느껴 대형연구시설 구축로드맵을 마련하고, 대형연구시설의 현황파악을 실시했다는 것이 다행스럽지만, 앞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 더 많다.
대형연구시설 구축로드맵이 정부 예산과 연계되도록 하는 한편, 사전타당성 검증체계를 마련해 R&D예산 투자효율성 제고에 힘써야 한다. 구축단계에서는 타 국가와의 협력을 통해 시설을 구축할지라도 구축기술 역량 확보를 통해 해외 기술의존도를 낮춤으로써 지속적인 선도적 연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운영〃활용단계에서는 미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대형시설들의 소유는 국가로 하고 가장 적합한 기관에 유지관리 활용을 맡기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대형연구시설만을 위한 평가시스템을 도입해 안정적 운영을 지원하고,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국가차원의 전담관리 기관 신설이 시급하다.
정광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khchung@kbs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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