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로마의 강력한 적수로 이름을 떨친 그리스 장군 피로스는 계속되는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수만의 병사를 잃고 시름에 잠겼다. 전쟁 직후 그는 “로마인들과 싸워 한 번 더 승리를 거둔다면 우리도 완전히 끝장날 것”이라며 씁쓸한 승리의 소회를 밝혔다고 한다. 승자에게 엄청난 손실을 안겨 결국 모두 망하는 상황을 빗대 `피로스의 승리`라고 부르게 된 이유다.
2010년 시작된 태양광 시장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재고품이 넘쳐나자 태양광 업계는 저가로 제품을 투매했다. 말이 판매지 박리다매를 넘어 그런 덤핑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대형 태양광발전소 프로젝트에 저가 모듈이 섞여 판매되는 등 이전투구식 영업을 하는 기업도 등장했다.
치킨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상도를 기대하기 힘들었다. 시황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이익을 포기한 채 묻지마 영업행태를 보이는 기업이 여전히 활개하고 있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제품 생산비용을 낮춘 것이 아니라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영업에 나서는 기업들이 많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업계 모두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기술개발로 생산원가를 낮추는 등의 정상적 가격하락이 아니기 때문에 영업손실은 진행형이다. 영업에 성공한 기업도 손해를 보니 승자로 부를 수도 없다. 말그대로 피로스의 승리인 셈이다.
최근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중국 캐나디안솔라 등 일부 기업은 매출이익률이 20%에 육박한다. 이들 기업 중에는 저가 판매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기업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새로운 사업모델로 불황을 이겨나가고 있다. 발전사업에 진출해 EPC, 전력판매업으로 수익을 창출하거나 고효율 태양전지 제조기술로 진입장벽을 높였다. 제살 깎기 경쟁을 지속하기보다는 생존경쟁에서 불필요한 출혈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른 무기를 선택한 것이다.
기술개발, 사업모델 다변화 등 어떤 방식이든 생존에 대한 고민과 투자가 없다면 살아남아도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태양광 시장이다. 피로스의 승리를 피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결국 진짜 승리, 생존을 담보하는 선결과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