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컵에 우유가 절반 정도 담겨 있다. 어떤 사람은 이를 보고 “우유가 절반밖에 없어”라며 실망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우유가 절반이나 남았네”라며 반긴다. 똑같은 사실이지만 어떤 각도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이른바 `프레임(틀짓기) 효과`다.
보수와 진보로 갈라선 우리 사회는 날마다 날선 프레임 전쟁이다. 누구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식이 있다고 하고, 누구는 정치적 공작이라고 몰아붙인다. `대선 불공정` 프레임에 맞서 `대선 불복` 프레임이 마주보고 달린다.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지 어떤 미디어를 선호하는지에 따라 국민은 갈라선다. 프레임 전쟁이 야기하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위태위태하다.
프레임은 비단 정치적 이슈에 그치지 않는다. 새 정부가 내세운 창조경제 역시 `창조경제가 도대체 무엇이냐?`라는 프레임에 갇혀 7개월간 허송세월을 했다. 오죽했으면 `창조경제`는 `안철수의 새 정치` `김정은의 속마음`과 함께 아직도 3대 미스터리로 회자될까.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항상 다른 프레임으로 맞서던 보수와 진보 언론이 `창조경제 미스터리` 프레임에는 한목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창조경제 미스터리` 프레임이 아주 강렬하고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얘기다. 반년이 지나도록 `미스터리 프레임`을 혁파할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한 정부의 실책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창조경제 미스터리` 프레임이 얼마나 비생산적인지 이젠 한번 생각해볼 때가 됐다. 촌각을 다투는 세계 경제 각축장에서 우리가 너무 한가한 프레임에 갇혀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새겨봐야 한다. 고개를 돌려 가까운 일본과 비교해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지난 반년 동안 일본이 `아베노믹스`를 모토로 글로벌 경제대국으로 재부상하는 동안 한국은 `창조경제 미스터리`의 덫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아직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차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창조경제 개념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풍경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프레임 대전환은 결자해지로서만 가능하다. 정부의 대응 전략이 바뀌어야 한다. 냉정하게 평가해보면 지금까지 정부의 대응은 너무 수세적이었다. 그간 창조경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개념적인 정의보다 손에 잡히는 뭔가를 보여 달라는 함의가 담겨 있었다. 개념을 설명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새 정책의 실행력을 높이는 데 올인해야 한다. `창조경제 미스터리` 프레임을 `창조경제 실천` 프레임으로 바꿔야 한다.
최근 미래부의 노력도 엿보인다. SW산업 발전 전략, R&D 로드맵, 신산업 창조 프로젝트 등 굵직굵직한 실천 플랜이 연거푸 나왔다. 내년 부산에서 열리는 `ICT 올림픽`인 ITU 전권회의 준비에도 사활을 걸 태세다. 하나씩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면 창조경제에 대한 의문도 조금씩 풀릴 것이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프레임도 점점 힘을 얻는다. 문제는 반년간 뿌리 내린 프레임을 바꾸려면 아주 공세적인 실천력이 담보돼야 한다는 점이다. 미래부 혼자 불가능하다.
벌써 미래부가 발표한 정책이 예산 확보가 안 돼 `용두사미`가 될 것이라는 비판이 높다. 150년 만에 처음 유치한 ITU 전권회의 예산조차 반 토막 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7개월간 옴짝달싹 못하게 한 `창조경제 미스터리` 프레임이 내년에도 지속된다면 악몽이다. 만약 그렇다면 박근혜정부 5년은 희망이 없다.
장지영 ICT방송산업부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