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전성시대의 두 얼굴
올해 새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창업 생태계 조성 지원 정책이 효과를 내고 있다. 지난 2000년대 초반 창업 열풍이 일었던 것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나은 수준이다. 당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IMF가 마무리되고 IT붐이 일면서 매년 6만여개 기업이 새로 탄생했다. 하지만 이후 7~8년간 IT 열풍이 시들고 더 이상 새로운 창업 기회가 발굴되지 못하면서 사람들은 창업에서 취업으로 발길을 돌렸다. 최근 스마트폰 혁신, 베이비부머 은퇴, 정부의 1인 창조기업 정책 등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만 7만4162개 기업이 탄생했고 올해 상반기에는 이를 뛰어넘는 수치를 보였다. 2000년 초반의 창업붐을 단숨에 뛰어넘은 셈이다.
하지만 `질적인` 성장을 보였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창업 수치에는 커피전문점이나 치킨집 등 소상공인을 양산하는 생계형 창업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창업이라면 관련 기관에서 간단히 몇 천만원 정도를 지원받아 바로 점포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업체는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힘들다. 단기적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갈 순 있겠지만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한 업체는 아니다. 국가 성장이나 경제 발전에도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생계형 창업 대비 기회형 창업 비중은 1.3으로 혁신주도형 경제국 중 그리스와 슬로바키아에 이어 최하위 수준이다. 생계형창업(Necessity-driven)은 창업 이외에 대안이 없는 경우로 요식업 창업을 의미하며 기회형창업(Opportunity-driven)은 고용기회를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창업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 우려할 만한 것은 이 수치가 2008년 1.2에서 2011년 0.9로 하락했고 지난해 1.3으로 상승했지만 이마저도 후진국 수준이라는 점이다. 범위를 더 좁혀 일반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파악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스마트폰 도입 이후 모바일 등 ICT 분야에서 큰 비용 없이 창업이 가능해져 스타트업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2012년 벤처기업으로 등록된 혁신형 중소기업 수가 2만8193개로 급증했다. 창업 동아리, 대학교 창업 강좌 등 이전보다는 창업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환경이 조성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스타트업이 주목하고 있는 분야는 대부분 모바일 서비스 분야다. 국내 앱 시장의 경우 소비자의 유료 콘텐츠 인식, 모방앱, 플랫폼 독점등으로 인해 성과를 내기 힘들지만 모두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어떤 창업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증강현실 솔루션을 보유하고 있던 올라웍스를 인텔에 350억원에 매각한 류중희 인텔코리아 상무는 “요즘 서비스와 애플리케이션 레벨의 창업이 많다”며 “좀 더 원천 기술에 기반한 스타트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입장벽이 높아 기술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인재인수(acqui-hire)` 등의 형식으로 만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현실은 어떨까. 전형적인 기술기반 창업이라 할 수 있는 교수·연구원 출신 창업은 여전히 감소세다. 벤처기업협회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교수·연구원 출신 벤처기업 비중은 2004년 39.5%에서 2011년 8.6%로 하락했다. 석·박사들의 창업이 줄어들면서 벤처기업의 기술수준 역시 떨어지는 추세다.
국내에서 `유일한` 기술을 적용한 벤처 비중은 2009년 17.9%에서 2011년 11.1%로 하락했다. 그야말로 기술 기반 스타트업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창업에서 가장 애로사항으로 꼽히는 대출이 힘들다는 것도 큰 원인이다. IBK은행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창업기업 중 81.4%가 기술성 평가 대출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밝혔지만 금융권은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문제는 금융권의 기술가치 평가 인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기보와 신보 등에서 추산한 기술가치 평가결과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 단기간에 기술평가 대출 시스템을 정착시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벤처캐피털(VC)들의 투자가 갈수록 기술 기반 스타트업에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트렌드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VC들의 눈매가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다. 기술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파이브락스는 일본 VC인 글로벌브레인에서 25억5000만원이라는 거금을 유치했다. 파이브락스는 모바일 게임을 위한 데이터 분석과 실시간 마케팅, 운영 기능을 제공하는 비즈니스인텔리전스(BI) 서비스를 제공한다.
세계 3대 해커 홍민표 대표가 만든 에스이웍스는 소프트뱅크벤처스·퀄컴 등에서 20억원 자금을 수혈받았다. 지난 3월 공개한 모바일 보안 SaaS인 메두사헤어, 스미싱 가드 등의 제품은 글로벌 기술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앞으로 기술 기반 스타트업 창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사회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활성화 방안도 선행되어야 한다. 기술창업 공모를 통한 예비창업을 지원하고 출연(연)에 예비창업 트랙을 도입하여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프로그램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ETRI는 2011년 연구원 대상 예비창업 지원제도를 도입하여 일정기간 연구원 신분을 유지한 채 예비 창업 과제를 수행하게 함으로써 자금지원을 하고 있으며, 예비창업 공간과 장비를 지원한다. 이를 일반인을 대상으로 모집해 다른 기관과 연계하는 클러스터가 형성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기술 기반 스타트업 탄생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