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비리가 끊이지 않게 나온다. 법정관리 사태를 맞은 동양은 오너 일가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로 국민 분노에 불을 질렀다. 기소 사정권에 든 효성도 탈세, 분식회계 혐의에 차명 대출, 불법 외환거래 의혹까지 검찰과 국세청은 물론이고 금융감독원, 관세청 발로 쏟아져 나온다.
그간의 경험상 재계 비리 혐의는 사실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거론된 의혹도 그럴 것이다. 불법 행위 처벌에 성역이 따로 없다. 치밀한 수사와 판결을 거쳐 엄벌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공식 수사 발표 전에 피의 사실이 마구 흘러나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피의사실은 말 그대로 의심이 든다는 말이다. 검찰이 어느 정도 확인해 기소하더라도 확정 판결 전까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한다. 0.1%라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추적 보도라면 모를까, 당국이 공식 발표 이전에 피의사실을 유출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 지금 이 원칙이 무너진 모양새다.
두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정부 당국 책임 규명이 소홀해진다. 정부가 모든 기업을 일일이 감시할 수 없다. 그런데 수사에 오를 정도의 대기업 비리라면 지속적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금융당국의 감시 시스템에 허점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여론재판은 이런 문제 제기를 희석시킨다. 금융감독원은 앞으로 부실 우려 기업 감시를 강화하겠다는 대책을 밝혔다. 하지만 그간 어떤 구멍이 있었으며 어떻게 보완할 지 밝히는 게 순서다.
재계 사기도 고려해야 한다. 일부 비리가 모든 기업을 비리집단으로 만들 수 있다. 가뜩이나 기업마다 경영 위기다. 삼성전자를 뺀 대부분 기업 실적이 썩 좋지 않다. 한국 경제 위기 상황이다. 재계 비리의 무차별 폭로가 자칫 경영 활동과 투자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
기업 범죄는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투자자 피해를 초래한다. 현행 법보다 처벌 수위를 더 높여야 한다는 주문도 많다. 그러나 판결 이후 얘기다. 수사 단계임에도 마구 흘러나오는 피의사실이 엉뚱한 경제적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기업 비리 수사가 정치·사회 범죄 수사와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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