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재난망 실종, 누가 책임질건가?

10년 이상 끌어온 재난안전통신망 사업이 내년에도 진행되기 어렵게 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비타당성 조사가 미뤄지며 내년 예산에 관련 사업비가 한 푼도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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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망 실종` 사태의 표면적 원인은 보고서를 제때 내놓지 못한 KDI에 있다. 보고서가 예정대로 6월에 나왔더라면, 혹은 늦어도 8월에 제출이 됐더라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주무부처와 기관, 청와대에 이르는 광범위한 정부조직이 책임을 서로 떠넘기며 시간을 지체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재난망 사업은 국민 안전을 우선시하는 박근혜정부 들어 40대 집중관리 과제로 간주되며 추진력을 얻는 듯했다. 사업이 시작된 2003년 이후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점쳤지만 어느 순간 누구도 결론 내리기를 꺼려하는 사업으로 전락하며 다시 천덕꾸러기가 됐다.

안전행정부는 관행을 깨고 와이브로와 테트라 등 기술후보 방식을 복수 선정해 올리며 공을 KDI로 넘겼다. 테트라는 계속 독점 문제가 불거져왔고 와이브로는 국가 정책상 진화방향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를 피해간 것이다. KDI는 자료 미비 등을 이유로 이에 대한 판단을 미루며 결국 예산반영 시기를 넘겼다.

이 과정에서 추진력을 더해야 할 여당과 청와대는 사실상 개입을 포기했다. 세수 고갈에 따른 예산 부족도 이유지만 무엇보다 관심이 없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재난망 사업이 미뤄지면 국민 안전에 구멍이 생긴다. 경찰, 소방 등 재난 필수 기관은 물론이고 사업을 기다리며 차일피일 통신망 업그레이드를 미뤄 온 지방자치단체들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재난망은 우리나라 국가 정책 결정과정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그럴듯한 명분 뒤에 서서 뒷짐만 졌던 결과가 국민 안전에 어떤 위협을 가져올지 이제 아무도 예측할 수 없게 돼 버렸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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