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제작비 10분의 1에 목메는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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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때문에 더는 잃을 것도 없었습니다. TV방영만으로는 도저히 제작비도 건질 수 없어서 TV방영을 포기하고 TV가 아닌 다른 곳에서 애니메이션을 틀었습니다.”

지금은 확고히 인기를 잡은 `라바`도 한 때 사라질 위험까지 갔다. TV 방영만으로는 제작비도 건질 수 없는 한국 애니메이션 시스템에서 투바앤은 TV방영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대신 미용실, 지하철 등 스크린이 있는 곳이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역발상은 대성공했고 투바앤은 직·간접 매출 3000억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라바뿐 아니다. 애니메이션 불모지라 불렸던 우리나라가 변하고 있다. 뽀로로를 시작으로 로보카폴리, 안녕 자두야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얻고 있다. 극장 애니메이션의 해외 진출 소식도 들린다. 애니메이션 `넛잡`과 `히어로즈`는 내년 전세계 동시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공한 업체들의 매출은 대부분 콘텐츠가 아닌 다른 곳에서 나온다.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은 애니메이션 콘텐츠 방송 판권료는 매출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평균적으로는 TV용 애니메이션 한 회당 제작비 1억원 정도가 들지만 방송사가 지급하는 판권료는 1000만원에 불과하다.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인 구조다.

20분짜리 애니메이션 한편 당 제작비가 1억원이나 드는 점을 감안하면 막 애니메이션 업계에 발을 들인 자본이 부족한 애니메이션 제작자는 섣불리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없다. 정부에서 좀 더 애니메이션 제작자가 콘텐츠 제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애니메이션 판권료 조정 등 교통정리를 해줘야 하는 이유다.

첫 단편 애니메이션 `오윌리`로 시카고영화제 등 수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엠마 데 스와프 감독은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자에 비하면 나는 운이 좋은 편(lucky)”이라며 한국 실태를 꼬집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 생계가 힘들지는 않다”며 “벨기에 정부 지원도 있고 프랑스에는 인디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의 애니메이션만을 방영할 수 있는 방송채널도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의 여유로운 미소를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자에게서도 보고 싶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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