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은 근대 유럽 양식 건물이 줄지어 늘어선 2차선 도로. 뜨거운 한낮인데다 시내를 벗어나 있어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 거리로 난 창문에 눈을 가까이 하기 전까지 많은 건물은 오래된 레스토랑이나 잡화점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IT기업이란 사실은 영국 정부 관계자 설명을 듣고서야 알았다.
겉치레보다 `속`, 즉 열정과 문화를 황금같이 여기는 오래된 동네는 런던 동부 쇼디치와 올드 스트리트에 위치한 영국 창조경제의 본거지 `테크시티(Tech City)`다. 이름만 들으면 높은 현대식 건물로 가득할 법하지만 이곳은 선입견을 넘어선다. 청바지 입은 개발자들이 맥주병 부딪치며 허물없이 소통하고, 많은 수입보다 열정이 이끄는 방향을 따른다.
구글·인텔·시스코·보다폰·아마존 등 IT기업이 줄줄이 들어온 런던 테크시티는 이미 입주 기업 수 기준 유럽 최대 IT 클러스터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창의의 본산이자 IT 스타트업의 요람, 테크시티 속으로 들어가 봤다.
◇1300여개 IT기업 모여…문화와 기술의 복합공간
런던 시내의 천정부지 부동산 가격과 물가를 감당하지 못한 창업가들이 하나 둘 외곽에 단칸 사무실을 얻기 시작한 것이 테크시티의 시초다. 이젠 세계 IT기업이 찾아들고 유럽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디지털 클러스터`로 자랐다.
모바일·소프트웨어·게임·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1300여개 이상 디지털 회사가 자리한 테크시티에는 패션·마케팅·디자인·가구 등 다양한 업종 기업이 즐비했다. 클럽·바·갤러리·레스토랑도 경계 없이 섞였다. 자연스럽게 `융합` 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었던 배경이다. 여기에 벤처캐피털(VC), 시드펀드(Seed Funds)와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 교육기관과 이벤트사, 그리고 정부 기관까지 밀집했다.
이곳의 주류를 이루는 18~34세의 젊은 창업가와 개발자는 서로 긴밀히 영향을 주고받으며 놀이처럼 연구하고 일한다. 쉬는 날이면 건물과 건물 사이 공터에서, 점심 혹은 업무 시간 이후엔 수시로 바와 레스토랑에서 만나 소통하는 문화가 깊숙이 배어 있다. 영국 사람들이 테크시티를 단순 물리적 건물 집합소가 아닌 `공동체(Community)`라 부르는 이유다.
아드리언 티퍼 영국 무역투자청(UKTI) 테크시티 투자유치담당은 “진동해서 소리를 낼 만큼 생생하게 잘 만들어진 예술 공동체”라며 “영국의 문화, 무역과 디자인(가구·패션) 생산의 역사가 살아 숨 쉰다”고 설명했다.
예술가와 각종 스튜디오, 음악적 유산이 맞물려 젊은 창업가에게 영감을 불어 넣는다. 건물 내외부 인테리어도 모던함보다 파격에 가까운 예술을 택했다. 다소 거칠게 모인 문화의 힘은 테크시티가 가진 창의력의 원동력이다.
◇창업, 투자부터 홍보까지 `올인원(All-in-one)`
테크시티는 단순히 기술을 만들 뿐 아니라 서로 연결돼 시너지를 높이는 유기적 공동체다. 투자사와 엔젤 투자자, 인재 서비스 기업, 홍보·마케팅 회사, 금융가가 한데 모였다. 앤드류 험프리스 베이커리 대표는 “테크시티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네트워크`”라고 강조했다. 베이커리는 스타트업과 대기업 매칭 기업으로 테크시티의 잠재력 있는 작은 업체들의 사업 연결과 마케팅을 돕는다.
서로 다른 업을 하는 이들의 공동체 효과를 극대화하는 테크시티의 장치가 있다. 수시로 열리는 다양한 형태의 `네트워킹 이벤트`다. 곳곳에 자리한 30개 넘는 개방된 공간에서 인재를 교육하거나 지식과 경험도 나눈다.
영국 정부 테크시티투자조직(TCIO)이 주최해 열리는 `창업가(Entrepreneur) 페스티벌`이 대표적이다. 테크시티에 있는 게임·웹·모바일 분야 IT 스타트업이 참여한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 미국에서 온 다양한 멘토가 테크시티를 직접 찾아 이틀간 일대일 미팅을 하거나 콘퍼런스를 연다. TCIO는 영국무역투자청이 테크시티 활성화를 위해 만든 정부 조직 이름이다.
`디지털 쇼디치(Digital Shoreditch)`는 눈에 띄는 IT·창업 인재를 위한 행사다. 문화와 유행의 중심지인 이곳 본래 지명 이름을 땄다. 120여개 실력 있는 스타트업이 런던에 모여 일주일간 경연을 펼치는 `스타트업 게임스(Startup Games)`도 유명하다.
영국 정부는 2000년대 중반까지 벤처기업이 열댓 개에 불과했던 곳에 전담 TCIO까지 꾸려 테크시티를 집중적으로 키워냈다. 2010년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쇼디치의 창의성과 에너지, 올림픽 파크의 무한한 가능성을 결합해 런던 동부를 세계 최고의 IT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각오를 드러내며 `상전벽해`를 약속했다. 그 결과 미국 실리콘밸리와 뉴욕에 비견되는 스타트업 명소이자 벤처기업 육성과 경제 활성화의 허브로 육성시켰다.
테크시티의 7대 특징과 장점 (출처:영국 정부)
런던(영국)=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