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1주년 특집]창조, 사람에게 묻다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웹툰의 발자취“만화 작가치고는 비교적 이른 나이인 스물 다섯 살에 데뷔했습니다. 하지만 곧 만화 연재를 접고 다시 문하생 신분으로 돌아갔습니다.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실력이 너무 약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죠. 2년간 스토리 공부를 다시 했습니다.”
미생, 이끼 등 탄탄한 줄거리가 강점인 웹툰을 쏟아낸 작가의 시작은 완벽하지 않았다. 윤태호 작가는 데뷔한 뒤 자신의 스토리 실력이 심각할 정도로 부실했다고 회상했다. 윤태호 작가는 다시 조운학 작가의 화실로 돌아가 드라마 `모래시계` 등 여러 시나리오와 소설을 필사했다. 윤 작가는 “2년간 스토리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이야기를 부수적인 요소로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요즘 많은 웹툰들이 지나치게 스토리 중심으로만 가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림으로 보이는 부분도 스토리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작가는 “요즘 세태를 보면 지나치게 스토리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며 “모든 창작물의 기본은 문학이지만 웹툰에서는 비주얼도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윤 작가는 출판 만화가에서 디지털 만화인 웹툰 작가로도 모두 성공했다. 2000년대 초반 대형 포털들이 웹툰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출판 만화책이 쇠퇴하고 디지털 만화인 웹툰을 이용하는 이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윤태호 작가는 종이에서 디지털로 만화의 무대가 바뀐 것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윤 작가는 “웹툰과 출판 만화가 크게 다르지 않다”며 “그림 자체가 변하기보다는 사용 도구가 바뀐 것”이라며 “웹툰을 시작할 당시 젊은 작가에 비해 빠릿빠릿하게 적응하지 못했지만 곧 적응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웹툰 미생도 윤 작가가 출판 만화가 당시 기획했던 작품이다. 윤태호 작가는 “10여년 전에 내기 바둑과 회사 창업 만화를 준비하다가 엎어진 적이 있었다”며 “10여년이 지난 후 아무것도 모르는 출판사에서 다시 이런 내용을 제안해서 예전에 기획했던 두 작품을 합친 게 미생”이라며 “결과론적으로는 운명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 작가는 모르는 것은 만화로 그리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많은 미생의 독자들이 회사 생활을 안 해본 윤 작가가 현실적인 회사 생활을 만화로 녹여내는 데 감탄했다. 이 같은 생생함은 윤 작가의 철저한 취재에서 나온다. 그는 “시즌2에 나오는 요르단 에피소드를 위해 조만간 요르단을 방문하고 주인공의 활동무대가 중소기업으로 바뀐 만큼 중소기업에 대한 취재도 곧 들어간다”고 말했다. 윤태호 작가는 내년 가을 웹툰 미생 시즌2를 연재한다.
미생이란 제목이 나오게 된 것도 `모르는 것은 그리지 않는다`는 윤 작가의 고집 때문이다. 출판사에서 제안한 미생의 제목은 고수였지만 윤 작가는 거절했다. 그는 “고수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뭔가를 잘하는 이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 이런 정서로는 작품을 못 만들 것 같아 제목을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두 집을 만들어야 `완생(完生)`이 되어 살아남을 수 있는 바둑판에서 `미생`은 한 집뿐인 상태를 말한다.
윤태호 작가는 웹툰이라는 영역을 넘어 영화, 출판 만화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했다. 미생 단행본은 30만부가 팔렸다. 이미 성공한 그지만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웹툰 작품을 위해 애쓰고 있다. 대중문화 평론가 김봉석 씨와 함께 만화 전문 리뷰 웹진 `에이코믹스`를 창간했다. 윤 작가는 “잘 알려진 기성작가의 작품 말고도 좋은 웹툰 작품들이 많기 때문에 좋은 작품을 알리는 웹진을 만들게 됐다”며 “다양한 만화에 대한 리뷰가 있는 웹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인 작가였을 때 윤 작가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윤태호 작가는 “무조건 버티자고 결심했다”며 “대단한 꿈을 꾸기에는 만화를 너무 잘 그리는 이가 많았다”며 “`만화가로서 살아남는다`는 생각뿐이었다”고 고백했다. 만화가를 결정짓는 것은 재능과 노력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를 묻는 질문에 윤 작가는 “만화 작가는 노력이 100%”라며 “견디는 것까지도 재능”이라고 말했다.
◇윤태호 작가가 말하는 창조경제
윤태호 작가는 콘텐츠계의 창조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작가들의 창작 지원뿐 아니라 비평 등 비주류 분야 지원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태호 작가는 “현재까지는 작가 위주의 창작 활동에만 지원이 치우쳐왔다”며 “작가 위주의 창작활동도 중요하지만 예를 들어 리뷰와 비평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창작의 내용성이 좋아질 뿐 아니라 다양한 아이디어와 기획이 콘텐츠산업 쪽으로 흘러드는 물줄기가 될 것이란 논리다.
◇윤태호 작가는?
윤태호 작가는 1993년 `비상착륙`으로 데뷔한 20년차 만화작가다. 윤태호 작가는 이끼, 설국열차 프리퀄, 미생 등 다양한 웹툰을 그렸다. 특히 미생은 종합 별점이 9.8점으로 높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미생 단행본은 30만부가 팔렸다.
윤 작가는 웹툰 생태계 구축에도 관심이 많다. 작가는 대중문화 평론가 김봉석 씨와 함께 지난달 만화 전문 리뷰 웹진 `에이코믹스`를 창간했다. 유명한 웹툰 작가의 작품뿐 아니라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사이트다. 리뷰로 웹툰 등 다양한 만화 작품을 깊이 있게 소개할 예정이다. 그는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