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법 논란 2라운드
화평법(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 시안이 마련된 것은 3년 전 2010년 말이다.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이 화학물질 관리체계를 유해물질 중심에서 전체 화학물질로 확대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도 발맞춰 법개정을 준비했다.
국민 안전과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규정된 유해화학물질만이 아닌 화학물질 전체로 감시의 눈을 넓혔다. 그 결과 나온 것이 화평법이다. 국내에 들어오거나 제조되는 화학물질을 확인하고 유해성 등 안전사용에 필요한 정보를 사전에 확보·공유하자는 취지다. 처음에는 유해물질관리법이었다가 화평법과 화관법으로 나뉘었다.
시안을 마련한 후 정부안이 나온 것은 그로부터 1년 10개월이 지난 2012년 9월 28일이다. 산업계와 조율도 거쳤고, 환경 기준이 엄격한 유럽 규제(EU REACH)를 최대한 따랐다. 환경부와 산업부 정책협의회를 통해 입법절차를 밟는 것은 물론 시범사업도 추진했다.
그러던 와중 화학물질 관련 사고가 잇따라 터졌다. 가습기 살균제, 삼성전자 불산 사고 등으로 인해 화학물질에 대한 경각심이 극에 달했다. 이 때 환경노동위원회 심상정 의원실에서 화평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삼성정밀화학 등 몇몇 업체와 환경보건시민센터 등의 민간단체 정도가 모인 공청회를 한 차례 한 후 전체회의 의결, 법사위 통과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발의에서 공포까지 두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전자재료 업체들은 목소리 한 번 낼 기회가 없었다. 해당 사고가 법이 미비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도 아니지만, 정치권이 정치에 활용한 측면이 크다.
의원 발의로 지난해 말부터 개정 작업이 이뤄진 화관법은 공포 당시와 달리 논쟁이 수그러들었다. 해당 사업장 매출 최대 5%라는 과징금이 지나치다는 인식이 팽배했지만, 모든 화학사고에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등이 알려지면서다. 과징금은 고의·중복·중과실·조치명령 미이행 시 영업정지에 갈음해 부과하는 제도기 때문이다.
또한, 천재지변이나 단순실수에 의한 규정 위반에는 경고 중심으로 규정 이행을 촉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시 단계적으로 영업정지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오히려 지금은 규정의 불명확성, 평가서 비용 과다 등이 가장 큰 문제로 떠올랐다.
환경부는 화관법 관련 쟁점에 대한 문제 해결을 위해 협의체를 꾸렸다. 오는 12일 화관법 하위법령 협의체도 킥오프 행사를 갖고 격주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서영태 환경부 화학물질안전 TF 과장은 “현장 작업자와 관리자, 대응기관 등의 의견을 토대로 세부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현재는 화평법과 화관법 모두 시행령 제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환경부는 각각 분과를 나눠 협의체를 꾸렸다. 그러나, 이 협의체에 대해서도 업계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화학 기업은 화관법과 연관성이 높지만 화평법 협의체에 들어가 있는 식”이라며 “협의체 구성 자체가 구색 맞추기 식이 되다 보니 가장 민감한 기업들은 빠진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