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3·4등에도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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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꼴지, 일단 깔리는 신세.

언제나 1·2등을 위한 조연이면서 분명히 존재하는 자리다.

1등만 빛나고, 생존해야할 가치를 부여 받고, 사랑까지 독차지하는 세상이 된지 오래다. 오죽했으면 TV 인기 개그 프로에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자조 섞인 유행어까지 만들어졌겠는가.

어느 산업이든 `승자독식`의 원리가 구조적으로 뿌리내렸다.

사람들이 날마다 쓰면서 보고, 알게 되고, 즐기는 인터넷 서비스시장에도 이런 질서는 고착화된 지 오래다. 10년이 하루처럼 변하는 시대를 살지만, 절대 안 바뀌는 게 인터넷 1위와 2위사이고, 2위와 그 뒤 등수 간극도 마찬가지다.

10년 전, 인터넷 하는 것을 `싸이질`이라고 부를 정도로 잘나가던 곳이 있었다. 사실 지금 지구상 월 단위로 11억명이 넘게 쓰는 페이스북도 그 싸이질의 무대였던 싸이월드에서 좀더 진화된 서비스 모델에 다름 아니다.

SK커뮤니케이션즈가 운영하는 싸이월드는 이제 모바일에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하는 처지가 됐고, 직장인이 가장 많이 썼다는 메신저 네이트온도 카카오톡 PC버전에 위협 받고 있다. 몰려드는 사람 때문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던 것에서 이젠 `행여 잊혀질까` 두려워한다.

궁색해진 SK커뮤니케이션즈가 요즘 다시 `싸이`로 글로벌 주목을 받고 있다. `싸이메라`라고 하는 사진 기반의 SNS다. 동남아시아에서 선풍을 일으키더니 유럽·북미 등으로 세력을 키우며 3000만 다운로드를 넘어섰다. `카카오톡` `라인`이 입증했듯 서비스 하나면 회사는 물론, 국가 하나는 먹여 살릴 만한 사업이 되는 모바일시대다.

이제 출발이지만 `싸이메라`는 SK커뮤니케이션즈가 안고 있는 `가늠할 수 없는 가능성` 중 하나가 분명하다.

요즘 인터넷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또 하나의 영역이 있다. 바로 인터넷에서 보는 만화, 웹툰이다.

웹툰은 인기 작가와 독특한 스토리, 중독성 있는 전개 등으로 동영상과 함께 사람들을 가장 오래 인터넷에 머물게 하는 서비스 종목이 됐다. 선두권 포털들이 이 시장을 싹쓸이하듯 가져갔지만 최근 `무명의 돌풍`이 거세다. 좀체 일어나지 않던 일이라 쨍쨍한 여름날 소나기처럼 반갑다.

레진코믹스란 웹툰이 모바일을 발판으로 급속히 세력을 키우고 있다. 웹툰 생태계를 유통채널 다각화 차원에서 고민하던 정부도 못 보던 손님을 맞은 것처럼 반색이다.

레진코믹스는 아무리 굳게 다져진 성벽도 실력과 품질로는 뚫을 수 있다는 사실을 웹툰시장에 보여줬고, 그 즐거운 실험은 현재 진행형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좋아서 쓰는 건데, 내가 편리해서 자주 가는 건데 순위가 무슨 상관이냐고. 소비재 상품을 파는 것도 아니고, 읍소형으로 써달라고 구걸하는 것도 인터넷 이용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

순위가 뒤쳐진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고, 밀려난 서비스는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을 안고 있다.

다만, 인터넷 서비스의 다양성과 경쟁, 새로운 서비스의 출현과 지속적인 혁신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시도에 대한 사랑은 필요해 보인다.

인터넷을 더 풍요롭고, 생산적으로 가꾸는 것은 오롯이 이용자의 몫이다. 3,4 등 서비스가 갖고 있는 가능성에 자꾸 박수를 쳐줘야 1,2 등도 변화한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