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인수합병(M&A) 기근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M&A 부재는 선순환 벤처생태계의 파괴를 의미한다. 벤처의 지속성장을 가로막는 것으로, 궁극적으로 벤처가 주도하는 창조경제 구현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19일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벤처캐피털의 자금회수(Exit) 비중은 기업공개(IPO)가 97.7%(464억원)인 반면에 M&A는 2.3%(11억원)에 그쳤다. 벤처캐피털 자금회수 가운데 M&A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31.2%에서 2010년 25.5%, 2011년 7.4%, 2012년 5.6% 등 매년 급락세다. 벤처캐피털은 정부 또는 민간 자금을 모아 펀드를 결성해 벤처에 투자하며, 일정기간(펀드 운용기간)이 지난 후 회수에 나선다. 회수 방법이 IPO에만 쏠리면 피투자 벤처기업이 자금난을 겪는 등 부작용을 낳는다.
국내 M&A 비중을 미국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미국에서의 올 상반기 M&A 비중은 57.9%로 IPO 비중(42.1%)을 크게 앞선다. 지난해 미국 M&A 비중은 50.6%였으며 2011년에는 69.3%까지 올라간다.
건수를 기준으로 볼 때 심각성은 더 크다. 일반적으로 M&A를 통한 회수 기간은 IPO에 비해 짧아 건수가 많다. 올 상반기 미국에서 M&A 건수는 170건으로 IPO(29건)와 비교해 5.8배나 많다. 주요 회수 수단이 M&A인 셈이다.
M&A 부재는 창조경제 활성화의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한다. 스타트업·벤처가 개발한 창조적인 기술·서비스를 글로벌 시장에서 구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데 그 창구가 IPO에만 있는 것이다. 벤처가 IPO에 이르기 위해서는 상당한 검증과 시간을 요구한다. 그 사이에 자금난을 겪어 사업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채 접는 사례가 발생한다. 매년 벤처캐피털 투자는 500~600건에 달하지만 코스닥 IPO는 많아야 60~70건이다. 지난해 코스닥 IPO기업 수는 22개사에 불과하다. 올해 코넥스 시장이 열었지만 이 시장만으로도 여전히 한계다.
전문가들은 M&A 활성화를 위해 대기업이 나서야 한다고 주문한다. 마이크로소프트·구글·애플 등 다국적기업이 벤처 인수전에 뛰어들듯이 우리 대기업이 벤처기업 인수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를 위해 대기업의 벤처 인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없애고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민화 KAIST 교수는 “벤처강국인 이스라엘과 비교해 우리나라에 없는 것이 바로 M&A”라며 “민간의 벤처투자 확대뿐만 아니라 시장의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해서도 대기업이 참여하는 M&A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기범·김준배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