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 법안 관련 시행령·시행규칙 제정이 임박해 오면서 산업계가 관련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법안의 취지는 좋지만 과도한 규제로 자칫 제조업 뿌리를 흔들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가운데 업계는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와 업계는 최근 민관협의체 구성에 나섰으며, 각종 포럼과 소규모 세미나 등을 통해 규제 내용과 대응 방안을 공유해 가고 있다.
환경부는 이달 초 경제 5단체와의 회의 결과 경영자총협회를 간사로 하는 민관 협의체를 만들기로 했다. 종합대책 분과에는 업종별 협회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분과에는 협회와 기업 담당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계 대책반을 꾸리는 중이다.
올 상반기 화평법과 화관법이 제정되면서, 환경부는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하위 법령을 만드는 중이다. 환경부는 하위 법령 제정을 연내에 마무리할 예정이며 이를 위해 관련 업계와 협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협의체 구성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나 업계는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다. 환경부가 시행령 초안 작성에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초안을 만든 후에나 협의하자는 분위기다. 시행령 초안이 어떻게 나올지 종잡을 수 없어 업계가 긴장하고 있는 이유다.
화평법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쟁점 조항은 아무리 소량이라도 신규 물질을 등록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해외 선진국에서는 물론이고 현행법에도 소량 신규 물질은 등록을 면제하는 조항이 있었지만, 개정법에서는 이 항목이 빠졌다. 업계는 첨단 신제품 개발에 발목이 잡힐 것으로 크게 우려하지만, 환경부는 상위법이 규정하고 있어 어쩔 수 없다는 상황이다.
화관법에 대해서는 해당 사업장 매출액의 5%라는 엄청난 과징금 규모가 업계의 가장 큰 걱정거리다. 화학물질 사고 시 신고 조건 등이 불명확한 점도 문제다. 기업이 개정안을 준수할 수 있는 수준의 관리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개정 화평법·화관법이 국내 제조업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현안이지만 상당수 중소기업들은 법안 내용조차 모르는 사례도 많다. 최근 들어 중소 제조업체들을 중심으로 정보 공유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이유다. 다음 달 본지와 산업부가 공동 주최하는 글로벌소재기업포럼에는 화평법 대응 방안을 놓고 국내에 진출한 해외 소재 기업들이 논의할 예정이다. 업종별 협회를 중심으로 실무자 모임도 열리기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화학물질 규제가 비단 화학업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데도 그 영향을 모르는 기업들이 너무 많다”며 “현재 준비 상황이라면 2015년 시행에 들어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